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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Jul 18. 2019

#03 딸기꼬시기 대작전

- STEP ONE. 친해지기




2018년 7월 12일

순조로운 출발을 하는 듯 하였지.

그날 그 통화는 참으로 따스했었지.

무언가 신비로운 기가 우리를 감싸며

드디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도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렇게 한달이 지기세다.



사실 숱한 연애경험들과 엄청나게 발달한 눈치, 그리고 자신해 마지않는-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 덕분에 이 상황이 어떠한지는 그려지고 있었다. 상황이 그려졌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의로 환경설정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이다.  특정 전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다. 나름 정원 2천명이 넘는 조직에서 기획조정실 생활만 8년이다. 오렌지는 중장기 경영목표 및 비전과 연계한 전략적인 추진계획의 수립이 가능한 사람이다.


첫째, 우선 딸기씨는 착하다. 이건 그냥 보이니까 안다. 뭐 이렇게 쉬운 문제를 가지고. 넥스트! 둘째, 여자경험은 많지 않음이 분명하다. 외모에서 풍겨져 나온다. 여친이 관리해 주고 가꿔준 외모가 아니다. 아니 적어도 최근 몇년간은 여자와 담을 쌓고 살아온 티가 난다. 셋째, 그런 한편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닌 하다. 기회가 있다면, 본인에게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구태여 마다하지 않을 같은, 그에 더해 누군가가 생기면 그간 억눌러왔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그리고 오렌지는 여자 경험이 많지 않은 남자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있다. 사실 그런 이들에게 친근하게 행동하는 것은 주특기이기도 하다. 그냥 이것도 느낌으로 안다. 딸기씨는 오렌지가 친근하게 굴면서 밀어 붙이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오렌지의 마음이다. 그대 마음은 어떠한가? 솔직히 아주 솔직히 잘 모르겠다. 딱 한번 봤는데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왜 그것을 지금 당장 판단해야 하지? 오렌지 나이가 많아서? 바로 결혼 or not 또는 연애 or not으로 선택을 해야하는 의무 따위 멍멍멍 삐리리 꽁냥꽁냥 모르겠다. 아니다 싶으면 즉결처분?

그리고 무엇보다 꼭 연인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친구로 지내면 안되는 것인가?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나? 그리고 내 주변 세무사들은 전부 회사에 묶인, 필드 경험은 거의 없는 장롱라이센스 보유자들인 반면 딸기씨는 그렇지 않았다. 소개팅(은 개뿔 선본거 아님?)때도 그러지 않았냐능.. 우리집과 관련된 세무상담을 하니 신기하게 술술 나오지 않았냐능.. 전문가 지인이 늘면 좋지 아니한가!


오렌지씨는 가방 대신 검은비닐봉지를 들고 출근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다. 그런 오렌지씨보다 옷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동네이지 않은가! 내가 츄리닝바람으로 소개팅(은 개뿔 선본거 아님?)에 임하겠다고 하자 흔쾌히 반긴 딸기씨가 아닌가!


그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번 본 것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어차피 보이는 것이 전부인 외모 그리고 가면뒤에 숨겨진 행동과 같은 단편적 모습을 기준으로 향후 몇십년간의 행복을 판단하는 작태에 토가 나오던 참이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고 나쁨은 부차적인 것이고 우선은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이 우선인것 같다.


그래 그럼 결론을 내렸다.

그냥 친구하면 되는거지! 

뭐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구만.



헌데 이렇게 나 혼자만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전략목표달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렌지씨. 세부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시 그에 대한 분석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나의 포스에 약간 위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꿇리지 않는 스펙에 혼자 여기저기 오지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에 뭔가 강해보였을 듯 하고 뭔가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어서 바로 포기라는 결론을 내린것은 아니었을지?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느꼈던 것만은 확실하다. 공주병이 아니고 이런건 그냥 나이먹으면 다 느껴진다. 첫 만남에 나는 얘가 아니면 안된다는 불같은 마음이 솟아올랐을리는 만무하고 뭔가 싫지는 않은데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한마디로 까이기 싫었기 때문에 구태여 시도조차 안하고, 또한 후에 다가올 기회비용들을 생각하니 무의미 하다 싶어서 도저히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거겠지.

 it means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바이바이.

사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애프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뭔가 나를 배려하여 일부러 연락을 안한 그런 느낌이었다랄까...



2018년 8월 5일

그래서 보냈다.

용기있게 선톡 아니 선문자를 날렸다.

시간 상 비교적 바로 보낸 것이 아니라 부가세 신고가 끝났을법한 8월초가 좋다 생각하고 날짜를 은연중에 정하게 되었었지. 사실 뭐 씹으면 씹는 대로 아님 말고 그런 심정이었음.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그냥 하고나서 후회하는 것이 내 좌우명입니다.




헌데 본인이 이렇게 치밀하게 분석을 하여 행동을 했을거라는 억측은 하지 말지어다. 사실 오렌지씨는 그렇게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행동하는 기분파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과정들은 사실 날잡고 책상에 정좌하여 앉은 채로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리며 희번뜩한 눈으로 이루어 낸 것들이 아니다. 그저 한달여의 시간동안 틈틈이 혹은 단 1분의 시간에 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통찰이론을 접목하여 단 몇분만에 "아하!"를 경험하며 얻게 된 결론일지도 모른다. 본인은 후자에 한 표를 던지겠다.



여튼 뭐..

문자를 보내고 나자 전화가 왔다.


 나 문자 보냈다고 후배 밀미리뽕에게 보고하던 중이었는데 그냥 어색한 답문이 오는 줄 알았더만 전화를 했네. 맘에 든다. 고롬고롬 그래야지.


통화는 성공적이었다. 역시 뱅뱅돌려 말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아니 뭐, 딸기님이 죄송할것까지는 없고요. 나는 상관없는데 그냥 친구해도 되는거니까. 부담 안 가졌으면.. 거절당했다고 생각안하는데요."

"하하..하... 오렌지님..."

"그냥 동네 친구하면 되는거죠. 누가 결혼하자고 했나? 댄따 우낀다능."

"네네.. 그럴게요. 오렌지님. 친구해요."

"그럼 일단 말부터 놓고. 일단 딸기야. "누나"라고 부르는 것 부터 시작하렴."


"네..네? 시른데요. 저 원래 친한 사람한테는 누나라고 안 불러요."


BGM : 꼴랑꼴랑므흣므흣요망한노래


"그래! 그럼 우리 사귀자?"

이랬을 것 같냐능?


노놉


"뭔 개소리여? 어딜 기어올라?"

이랬을 것 같냐능?


노놉

그냥 알겠다고 했다. 니 맘대로 하시라고 했다.


(참고로 오렌지씨는 재수했는데요.. 대학동기생들한테도 꼬박꼬박 누나라고 부르게 했었던 경험이 있음. 폭력성을 보고 그들도 순순히 그리 하였다고 합니다.

동생이 "바보!"라고 하면 엄청 혼냈다고 합니다.. 한대 맞은 동생은 그 이후로 "바보" 대신 "바보언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러고 또 맞았지만. it means... 본 사건은 상당히 참은 것입니다.)



여튼 뭐 그렇게 친해지기는 성공한 듯 했다.


3시간 찍었다.


꾸잉꾸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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