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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Jul 31. 2019

#09 그날 밤, 남한산성

첫번째 터닝포인트

2018년 추석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9월 22일~26일. 총 5일. 길기도 하여라.


오렌지는 이번년도에 딱히 어디 해외를 나갔던 것도 아니고 집안의 명절행사는 전날 조금과 당일 오전이면 모두 종료되는지라 남은 빨간날은 고스란히 본인만의 시간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딸기씨네도 마찬가지인것 같았다. 벌초는 이미 지난주에 다녀온 듯 하고 이것저것 차례 등등은 본인 집에서 이루어지는 지라 이동할 일도 없다.


it means 뭔가 심심하니 만나서 놀면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

근데 딸기씨는 별로 그런 마음이 없어보여서 오렌지는 굳은 결심을 한다.

쌓아두었던 카톡대화를 저멀리 어딘가 블랙홀 내부쯤으로 던져버리는 바로 그 행위.


네네. 방을 나와버렸습니다.




(오렌지) 오후 1:34 "즐거운 연휴"

(딸기) 오후 1:36 "나도 즐거운 연휴"

(오렌지)오후 1:39 "넘나 졸림." + 도배도배도배도배

(딸기) 오후 1:40 "컹. 힘내라.."

(오렌지) 오후 1:40 "그대도 힘내라."


..... 대화단절.....


(오렌지) 오후 9:27 "설마 아직도 일하는거 아니지? 쉬엄쉬엄 하셔."


...... 공백 .....


(딸기) 오후 10:27 "어 시간이 벌써;;;"

(오렌지) 오후 11:04 "헐...."


오렌지의 고민얘기


(오렌지) 오후 11:18 "복잡하다. 그러하다. 땁땁시럽소."


....이대로 대화 끝...응답 無





사실 이게 뭔가 싶어 지친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것보담도 피같은 나만의 시간을 이렇게 계획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연휴가 긴데 뭔가 계획을 짜고 움직일껄 그랬나? 괜히 만나서 놀 것을 기대하면서 내 시간을 고스란히 비워두었던 것이 너무나도 한심해 보였다랄까. 


무엇보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간혹 보여주는 그 친절에 마음을 열었던 것이 실수였던 것인가? 원래 이런 사람아닌데. 아니다 싶으면 초반부터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철벽을 치고 넘어오면 죽여버린다 모드로 일관하던 오렌지씨였는데. 너무 경계심을 풀었던 것일까. 진심 후회한다. 생각해보니 선톡을 했던 것도 언제나 나다. 앞으로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막상 무언가 심적으로 정리를 좀 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선톡이 온다. 뒷북 둥둥둥



하루종일 씹다가 저녁때 다되서 답장보냄.  네네 그렇게 삼실에서만 계속 사세요 딸기씨 평~생






 그리고 그날 밤, 딸기는 또 야밤 드라이브를 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따라갈까 하다가 생각보다 별로 안 내킨다. 그냥 접자. 장난하나 승질나서 방도 나와버렸는데 왜 또 찌르고 난리야. 밀당하는거냐? 극혐이니까 이런거 하지마라.


은근다 흔자가라(안간다 혼자가라)



안간다고 안가 혼자가라고



아놔 마음 약해졌다ㅠㅠ 10분을 못가네



에레이 모르겠다. 

어차피 추석연휴고 딱히 할 것도 없고 날은 덥고 결국 그냥 못 이기는척 따라가주기로 한다. 





이전 드라이브와는 다르게 딸기는 무언가 루트를 생각해온것 같다. 예전에 오렌지가 '내부순환로를 차가 없을 때 운전하다보면 랠리를 하는 기분이야' 했던 것을 기억해냈던 것인지 내부순환로를 거쳐 외곽순환고속도로 타고 해서 최종 목적지는 남한산성이라고 한다.


췌 무슨 계획까지 짜오고 그래? 투덜투덜거리며 삐져가지고 꽁해있었...던게 아니고 뭐 평소처럼 그냥 얘기하면서 암치롱도 않은 척하면서 착한아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오렌지씨. 





그리고 어두컴컴한 남한산성 도착

도착시간은 대략 12시가 다 되었던 것 같고. 


쟈쟈 그럼 어디로 가볼까나? 하지만 딸기씨는 그닥 주변은 둘러볼 생각은 안하고 있었더라. 그냥 다리 스트레칭 정도만 하고 되돌아갈 생각이었던 듯. 뭔가 건축물 비스무리 어스름한 무언가가 있는 곳 까지는 애초에 가 볼 생각도 안 했던것 같다. 뭐냐 온김에 한번 보는게 좋지 않냐능ㅠㅠ

예전에 한번 방문한 경험이 있었던 지역이었다면 구태여 돌아다닐 생각은 안했겠지만 오렌지에게 남한산성은 사실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냥 있기는 싫었음.  역사적 의미가 그닥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우야된동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수준이니.. 뭐가뭔지 식별이 안된다..


 적극적으로 돌아다녀보려 했으나 왠만한 곳은 아주 당연히 잠겨있었지. 성곽답사를 위한 산길 역시 입구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거긴 뭐 더더욱 이 야밤에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리라.



사실 처음 도착했을때는 나도 기분이 꼴랑꼴랑해졌던게 정말이지 너무너무 캄캄했었던 지라 뻘쭘한 기운이 엄습했다. 간간히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일정거리 이상이 되면 식별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아주 어두운 루트로는 갈 생각을 하지 못하였음.



하지만 위의 건물을 문틈으로 겨우겨우 보고나서 돌아가야지 싶어 유턴을 하는데 밝은 달이 빼꼼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 맞다. 지금 추석이지.



폰카의 한계로 사진은 그냥 이정도


딸기도 그런 달을 발견했는지 멍하게 하늘 쪽을 응시한다. 마침 인적도 드문 곳이라 생활소음 조차도 들리지 않아 너무나도 조용하다. 정말이지 서울 한복판에서는 여간해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대장치가 연출되고 있던 상황. 그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대로 돌아가기는 뭐해서 인근 돌덩이에 앉아 잠시 달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에 딸기도 앉아있는 오렌지 근처로 다가왔다. 사실 우리는 동네친구 사이이고 가까이 붙어 앉기는 굉장히 민망한 관계였던 지라 딸기도 어느 정도 쯤에 자리를 잡아야 할까 굉장히 고심하다가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그들은 뽀...


이랬을 것 같냐능




그럴리가 있겠냐능

그냥 달보며 수다를 떨었다.



"달이 참 밝구나."

"그러게.. 지금 추석이니까."


"딸기야 나 작년 추석연휴때는 모로코 갔었어. 사하라에서 별 보겠다고 사막에서 1박 하는 캠프 패키지 갔었지. 거기 공기맑고 빛이 없어서 별이 잘 보이기로 유명해."

"오!"

"추석때가 달이 제일 밝잖아."

"그치!"

"그래서 별이 잘 안보였어."

"ㅋㅋㅋㅋㅋ오렌지 바보구나"



"웃지마. 그리고 그날 비도 왔어."

"응?"

"조심해. 나 사막에도 비 오게 하는 능력자야."



본의아니게 점프샷 도중 기우제를 지냈더니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었지



"헐"

"이슬비가 아니라. 천둥치고 번개도 쳤어. 텐트에 비 다새서 맞으면서 잤어."

"천재지변을 부르는 자.."

"조심해라."

"네.....알겠습니다..."





"오렌지야 그래서 별은 못봤어?"

"새벽 3시인가 그때 기적적으로 깼는데 마침 갰더라."



궁금해하실 그대들을 위해 (보정 이런거 못하니 대충보삼)



그렇게 묘한 분위기속에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왠지 친근감이 레벨업되는 그런 느낌. 차로 돌아올 때는 희안하게 아까는 분명히 뻘쭘해서 피했었던 어두웠던 그쪽 길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분 탓인가? 아까는 바로 돌아가려 하던 딸기가 이제는 최대한 더 있다가 가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기 마음속에 뭔가 오렌지를 향한 꽁냥꽁냥 꾸잉꾸잉한 느낌이 자리잡게 된 것은 바로 이 시점 부터였다고 한다. 뭔가 친구라는 선을 넘어도 괜찮다는 그런 느낌. 오렌지는 어땠냐고? 자존심 뭐 이런거 때문은 아니고 사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기는 개뿔 성질이 급해가지고 혼자 드라마찍고 영화찍고 생난리를 피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다 확신이 든 것은 사귀고 나서 한참이 지나였다는 것은 함정.




이제는 정말 집에가야지 싶어서 차를 세워둔 주차장 부근을 걷고 있는데 딸기가 자꾸 바지가 내려가는지 고무줄 츄리닝 반바지를 추켜올리는 것이 목격되었다. 

고무줄 바지인데 자꾸 왜 내려가나..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딸기는 오렌지를 붙잡고 뽀...





이랬을것 같냐능


노노


이런 소리가 들렸다.


"부왘!"




내려가던 바지를 올리느라 똥꼬에 긴장이 풀어졌었나보다.


내가 못 들었을것 같음?

그렇게 방구 안낀척하면 내가 모를 것 같음?

지금 같으면야 푸하하하 웃으면서 똥방구쟁이/챙피해/저리가 냄새나/님아 매너좀/똥은 싸고 다니냐/우왁 공기오염이다.. 따위의 멘트를 다다다다 쏟아부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냥 센스있게 못들은 척 해주었다.


잠시 뒤에 딸기는 급하다며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시간이 꽤 오래걸린걸로 보아 아무래도...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우리는 다음번에 천문대를 가기로 약속했다.

육안으로 보는 별은 모로코 사하라사막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천문대에 가면 천체망원경이 있으니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시간이 되겠지.





야간 드라이브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여기도 검색했던 모양.



하지만 계속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꾸잉꾸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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