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9 오랜만에 찔끔찔끔 틈틈이
지난 주말, 베란다에 잠시 나와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적어도 몇년간은 기억속에서 사라졌었을 일본인 친구 리에코가 생각이 났다. 분홍색과 흰색 줄무니가 섞인 모자에 카키색 항공점퍼. 조금은 달라붙는 청바지. 발목 한참위로 올라온 부츠. 약간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어깨가 조금 내려오는 길이의 밝은 갈색으로 염색된, 그래서 조금은 부스스한 머리.
내 기억속의 그녀가 밝게 웃으며 서있던 배경은 확실히 도시는 아닌 시골이었다.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의 대부분이 도시가 아닌 포도밭이 펼쳐진 호주 남서쪽 구석의 마가렛리버였으니. 몇년이 지나고 그녀가 리얼 도시인 서울에 놀러왔을때의 기억은 그녀의 전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그닥 큰 효과를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기억속의 그녀와는 달리 외국인노동자 이미지를 벗은 모습이었을진대. 그 모습은 전혀 인출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렇게 과거의 기억의 잔상들이 머릿속에 떠돌아다닐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 기억은 과연 나의 뇌 어딘가에 저장된 진짜 기억인 걸까?
혹은 어떠한 사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2008년, 가속도를 잔뜩 머금은 채 노트북 하드디스크쪽으로 자유낙하했던 다리미 탓에 이전에 촬영한 대부분의 사진들을 잃게되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현저히 차이를 보이는 나의 기억력 덕분인지, 현재 수중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꽤 많은 사진들이 아직 머릿속에 남겨진채 그대로 있다. 리에코도 마찬가지다. 2005년에 찍었던 상당 수의 나의 사진속에는 그녀가 함께 있었다. 내가 며칠 전 베란다에서 떠올린 그녀의 모습은 아마도 지금 또렷히 기억하는 어떠한 사진속의 그녀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믿어의심치 않는 사실이다.
눈을 감고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여행지를 상상해보자. 얼마만큼 당시의 분위기와 풍경을 상상해 낼 수 있는지? 나는 최근 크리스마스 즈음에 필리핀 팔라완을 방문했다. 아직 한달도 안된 짧은 텀이 있음에도 불구, 지금 상상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현재 카카오톡 프로필에 걸어놓은 사진이라는 슬픈 이야기.
물론 아직은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기억을 더듬으면 왠만큼은 다 생각이 나긴 한다. 어둠을 헤치고 배를 타고 건너던 바다위에 펼쳐진 은하수, 머물렀던 숙소,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노쿨링을 했던 바닷속의 멸치떼 등등.헌데 그렇게 떠올려내는 와중에 아침마다 숙소 근처로 찾아들던 공작새들이 생각이 났고... 그러자마자 바로 신기하다며 엄마한테 까톡을 통해 송부했던 바로 그 사진이 또렷히 생각나서 공작새에 대한 모든 기억을 덮어버렸다는 슬픈이야기.
정말 슬픈일이다. 내 순수한 기억이 나의 욕심으로 인해 찍었던 사진들로 인해 오염되고, 그 사진만이 내 기억의 전부로 제한되어 버리기에.
최근의 기억들을 위해 공간을 내어준, 혹은 분명 뇌 어딘가에 자리는 잡고 있으나 원활한 인출이 불가능하여 사장된것 처럼 느껴지는 그 기억들이 포함되어 있는 어느 또 다른 순간. 당신들도 다시 한번 떠올려보라. 혹시 당신역시 그때 찍었던 사진 한장을 기억해내지는 않았는지? 나는 러시아 바이칼 호수를 떠올린다. 아 그때 정말 추웠지. 내뿜던 입김이 얼어붙어서 머리카락과 마스크에 얼음이 생겼었어. 하하하하. 또 이 사진이 생각나. 이것도 분명 누군가한테 보냈던 기억이 나.
무한반복이다. 이를 2차 기억이라고 내 맘대로 칭하겠다.
2차 기억의 형성은 과거 기억일 수록 더 강하게 작용한다. 약간 과장을 하면 분명 기억이 안나는데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며 나는 이것을 경험했노라고 착각하게 되는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라는 질문에 나는 무엇을 답해야할까? 이런 질문을 받게되면 희안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사진이 있다. 외갓집 마당에 노란색 스웨터 차림으로 서있는, 3~4살정도 되어보이는 내가 찍힌 바로 그 사진. 사진이 찍히던 바로 그 순간이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가 바로 내가 가장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더라.
또한 2차 기억의 생성은 사진보기 반복학습을 진행한 경우 더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다. 리에코와 지내던 당시에는 정착된 안정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음은 물론 현재와 같은 도시문명의 혜택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어서 여가시간에는 우리가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노는 일이 많았다. 한국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처음으로 경험한 그것들이 소중해서 사진을 보는 일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또한 당시 자주 활용했던 싸이월드 사진첩도 한 몫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실제 기억은 점점 옅어지고, 반복학습으로 인한 2차 기억만이 점차 강해져 버렸겠지.
리에코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호주 와이너리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더 강했던 까닭은 학습을 통한 2차 기억의 형성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놀러왔을때도 사진을 찍긴 찍었겠지만 찍어만 놓고 분명 열심히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욘사마로 유명한 겨울연가 덕분에 일본인들에게 인기짱이었던 남이섬에 데려갔을 때 그녀가 참 기뻐하던 것이 생각이 나긴 하지만, 그냥 사실로써만 기억날 뿐이고 남이섬에서 그녀가 웃던 모습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니면 한창 신입이시절이었던지라 사진학습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최고로 뽑힌 사진들만이 SNS상에 남게되고 이는 계속 반복적으로 보게되고, 종국에는 최고가 아닌 사진들은 밀려드는 다른 사진의 홍수에 묻혀 그렇게 2차 기억의 공간에서조차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잊는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잊혀져가는 나의 기억들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 정도 되면 정말 사진을 찍는 것이 과연 여행지에서 필요한 행위인가 싶은 고민이 생길법도. 근데 또 무작정 그러기엔 이제는 내 기억력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바로 아침에 일어났던 일도 까먹는 요즘인데, 몇 주전 다녀온 여행지를 생생하게 기억할 리가 없기에. 그리고 여행지를 다니면 다닐수록, 특히 본인의 경우 온천을 다니면 다닐수록 온갖 전국의 온천들의 위치와 시설이 짬뽕되어 어디가 어딘지, 아주 임팩트 있게 다가왔던 온천이 아닌 이상 내가 여길 갔었는지 아니었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정도여서 무작정 안 찍는것도 또 아닌것 같고. 실제 브런치에 글을 적으면서 이러한 상황에 무진장 많이 직면하였다. 글을 적다가 내 기억력의 한계를 느낄때, 적어둔 일기가 없는 경우 사진에 찍힌 순서를 보며 나의 발자취를 추측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적어도 일기(diary)는 사진과 같이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이미지만을 저장하는 것만은 아니기에. 예전처럼 그냥 잊지 않기 위해 일기 또는 일지를 쓰고(그때는 그냥 습관처럼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잊지않기 위해 쓰는 것이었더라), 나중에 다시 읽으며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깔끔하게 순수한 기억은 포기하고 사진을 통한 기억에만 의지하여, 그렇게 2차 기억의 형태로만 연명해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사진을 찍기는 찍되, 일단 보는 것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운 기억을 통해 과거를 회상/인출해낸 다음, 그것이 진짜 기억으로 완벽하게 굳어진 이후에만 사진을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혹은 기억을 되살려보다가 정 기억이 안나면 문제 풀다가 답안지 보는 것 마냥 사진을 꺼내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뭐.. 내가 정답에만 집착하는 편집증 환자도 아니고.
정답을 내린다고 해서 그렇게만 행동할 것도 아니고.
결론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진이 기억의 인출을 방해한다는 사실. 마치 핸드폰을 들고다닌 이후부터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것 처럼. 기억 상실을 보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데에서 안심을 하고 판타스틱한 현장에 있음에도 불구 구태여 머릿속에 그 배경을 꾸역꾸역 집어넣지 않는. 그저 SNS를 위한 사진찍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슬픈 현실.
부디 다음 여행지에서는 폰카는 잠시 내려두고 순수한 기억을 위해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스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