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5 수업중에 불현듯, 1989년 오스나어린이의 이야기
요새 한창 또 여행기를 정리하다보니 늘 그렇지만 새삼 또 깨닫는 것. 나는 그렇게 길을 잘 찾는 편이 아니다. 그런 내가 길을 찾는 과정을 굳이 설명해봐면 정확한 추론에 의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 이상을 그냥 감에 의지하는 듯 하다. 세세한 장면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장면장면이 기억속에 저장되긴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전체를 카메라로 찍어 사진의 형태가 통채로 저장되는 듯하다. 그 안에 무슨 상점이 있었고 그 상점의 간판은 어떤형태였는지, 그 상점에는 창문이 있었는지, 그 상점은 1층에 있었는지 2층에 있었는지와 같은 정보는 사진을 확대할지라도 화소가 좋지 않음..은 개뿔 그냥 비어있는 공간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 결과 낮에는 분명 알던 길인데 밤에 오면 지도 없이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맑은 날에는 분명 알던 길인데 비가 오는 날에는 헤매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시간의 변화 또는 날씨의 변화로 인해 배경이 바뀌면 완전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한창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던 그 때에는 지금처럼 내비게이션이 흔했던 시절이 아니었다. 당연히 지도를 구입했고 그에 의존했다. 그때 생긴 경험치 덕분인지 나는 철저히 네비에 의존하는 사람은 아니다. 네비의 안내멘트보다는 이정표들이 익숙하다. 네비는 고장난 채로 몇년을 살다가 고치는 것을 포기했고, 핸드폰 네비 거치대의 사용은 익숙치가 않다. 그냥 네비가 싫은 이유는 익숙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내가 어느 공간에 어떻게 있는지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 상태에서 무언가 명령을 받는 느낌을 받아서 그렇다. 네비에 의존하면서 가다보면 무언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그런 느낌.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또 다시 네비에 의존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싫다. 길은 그냥 스스로 찾고 싶다. 뭐 이런 성격탓에 네비없이 운전하다가 헤매는 일은 부지기수. 원래부터 길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 똥배짱부리다보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뭐 어쨌든 반복하다 보면 헤매는 것도 극복되기는 한다. 다행스럽게도 운전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사진들을 많이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복학습을 통해 어떤 길들에 대해서는 아침시간, 점심시간, 노을지는 시간, 저녁시간, 밤시간 그리고 맑은날, 흐린날, 비오는날, 비오다가 갠날, 눈오는날 등등 여러 종류의 사진들을 머릿속에 가지게 되었다. 올림픽대로 어느 구간에 진입하던간에 진입하기만 하면 집에 다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익숙한 길이 많아졌다.
사실 앞의 얘기들은 그저 사족이고. 뜬금없이 이런 글을 적으려고 마음 먹게한 가장 큰 이유,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 때문에 노트북을 열었었다. 그것은 바로 초등학교(사실 국민학교지만 편의상 초등학교라고 하겠다)때의 기억.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문영예선생님과의 가슴아픈 이별을 했던 경험이 진하게 뭍어있는 월ㅇ초등학교를 떠나 2학년때 방ㅇ초등학교로 전학을 오게되는 아홉살의 오스나 어린이. 당시는 완전 학기초는 아니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B동 402호로 이사온 날이 1989년 4월 2일 일요일이었으니, 앞으로 적어내려갈 이야기는 1989년 4월 4월 화요일에 발생한 이야기인가보다.
새로 다니게 될 학교는 이전의 학교와 외관상 큰 차이점이 있었다. 기존의 월ㅇ초등학교에는 운동장쪽으로 나있는 교실 창문에 몇학년 몇반이 크게 표시되어 있었다. 아홉살의 내가 만난 학교라고는 월ㅇ초등학교가 유일했던 지라 모든 학교들이 그렇게 되어있을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다녀야 할 방ㅇ초등학교는 그렇지 않아서 멘붕이 왔다. 뭐 이런 비정상적인 학교가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쓸데없이 어른스러웠던 아홉살의 오스나 어린이는 이런 혼란했던 상황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있게 2학년7반을 찾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다. 뭐 한번 가봤으니까 상관없겠지.
다음날 아침 자신있게, 이번에는 혼자서 학교에 갔다. 일단 2층인 것은 확실히 기억났기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본다. 비록 운동장쪽으로 나있는 교실 창문에 몇학년 몇반이라고 써있지는 않았지만 교실 앞에는 써져 있을테니 들어가서 찾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2학년 7반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2층 복도의 처음과 끝을 누볐지만 2학년 7반은 고사하고 2학년 1반, 2학년 2반도 없었다. 기억에 혼동이 있었던 것일까? 2학년이니까 2층 아닌가? 아.. 교무실이 1층이니까 1학년이 2층, 2학년이 3층이었나? 그래서 이번에는 3층으로 올라가본다. 하지만 여기도 아닌 것 같다. 엄한 숫자들이 난무한 간판들이 보인다.
갑자기 앞이 캄캄해진다. 당시 굉장히 모범생이었던 오스나 어린이는 이제는 지각할 것이 조금 두려워 진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근처에 있던 주번 언니에게 2학년 7반은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언니는 조금 놀라는 눈치로 '후관'에 있다면서 '보도블럭'을 따라가라고 한다. 언니는 나에게 내가 모르는 단어를 두 가지나 쏟아냈다. 그 당시 아홉살의 오스나 어린이는 디귿자 모양의 단일 건물로 지어진 초등학교에서 갓 전학을 온 상태였다. 본관과 후관의 개념이 있지 않았다. 보도블럭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꼭 필요한 정보였음에도 불구 오스나 어린이는 그냥 불필요한 정보라고 치부해버리고 가던길을 간다. 그렇게 건물의 꼭대기까지 다 뒤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뱅뱅 돌고 있던 곳은 본관. 1층은 교무실을 비롯한 공통의 공간, 2층부터 4층까지는 고학년 교실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방황하고 있던 오스나 어린이. 계속 혼자 해결하겠다고 끙끙거리는중이다. 교무실로 찾아가도 되었을 것 같은데. 뭐 이해한다. 그런 대처능력은 아직 아홉살에게는 무리였겠지. 뜬금없지만 왜 어린이들이 길을 잃고 부모님과 헤어지는지가 이해가 가는 장면.
아까 본관에 들어올때 실내화를 갈아신을때 서 있었던 주번 언니인건지, 뭔가 아직도 내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의아해하는 눈치다. 언니는 주번이 끝나서 자기 반으로 들어왔던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다시 한번 물어봤나보다. 언니의 입에서도 '후관'과 '보도블럭'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아호 미치겠네. 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뭔가 쪽팔리고 창피한 마음에 그 자리를 피하기로 한다. 데려다 달라고 했을 수도 있는데 역시나 또 혼자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자립심이 그런 행동을 가로막는다. 이미 건물은 뒤질만큼 뒤졌으니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왔던 1층 처음부터 다시 해볼 참이다. 혹시 2층으로 올라가는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흠.. 근데 건물 앞으로 가면 왠지 선생님들을 만날 것 같다. 그래서 피한다. 뒷쪽으로 가보자.
뒷쪽으로 나와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어제 분명히 본관1층의 교무실을 나와서 선생님과 함께 걸었을 그 길. 기억속에 찍어두었던 바로 그 길. 그러하다. 오스나 어린이는 본인이 서 있던 본관 뒷쪽 현관에서 실내화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은 후 '보도블럭'을 걸어서 '후관'앞에 도착하여 다시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신은 후 2층으로 올라간다. 2학년 7반은 계단을 오르면 제일 처음 나온다. 2학년 끝반이다.
찾았다는 기쁨에 유쾌하게 닫혀있던 앞문을 드르륵 열었다. 때마침 담임 김신순선생님께 2학년 7반 아이들이 반장의 구호에 맞춰 "안녕하세요!"를 하고 있던 순간이다. 선생님을 바라봐야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로 향한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애써 당황한척을 하지 않으면서 교실 맨 뒤에 있는, 이미 "쫄짜"를 삼은-반에서 키가 제일 커서 혼자 앉아있던 남자아이의 옆 자리인, 내 자리를 찾아간다. 혹시 혼나는 걸까? 걱정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전학온지 이틀째인것을 고려했던 것인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처절하게 몸으로 체득했으니 이후로 교실을 찾을 때 헤매는 일은 없었다. 이번일을 계기로 '본관'과 '후관'의 개념도 이해했고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았던 터라 그 블럭이 블럭인지 모르는 채로 그냥 고유명사를 이해하듯 '보도블럭'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여튼 뭐 웃기고 신기하긴 하다. 쪼그만 아홉살짜리 꼬맹이가 바둥바둥거리며 온 학교를 누비고 다녔을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지금은 그때보다 다리라도 길지. 그리고 이후에는 익숙해지기라도 했지. 낯설었기때문에 더더욱 넓어보였을 그 공간을 홀로 정복할 생각을 했다니. 어릴때부터 혼자 여행을 떠날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혹은 본능이었는지. 아홉살의 오스나 어린이는 이런 삽질을 앞으로도 수십년간 계속 할 것이라는 것, 습관처럼 길을 헤매고 다닐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려나.. 이는 그 시발점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