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스나씨 Oct 13. 2020

참 완벽했던 탈북대학생 멘토활동

H성인상담2기_다문화상담_과제 5주차

팀의 막내가 쭈뼛쭈뼛 팀원들의 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손에는 종이 한 장. 곧 내 자리로도 오겠지 싶어 기다리고 있으니 역시나 출력된 종이를 내 앞에 슬며시 놓으며 말을 꺼낸다. 흘낏보니 ‘탈북 대학생’과 ‘멘토’라는 단어가 보인다. 막내가 말하길 인근 사회복지센터와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사회공헌팀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원치 않으면 그냥 본인 이름을 써서 내야 한다며 한숨을 쉰다. 기억컨대 그 프로그램은 1년만 한시적으로 운영되었고 다음연도부터는 진행되지 않았던 관계로 참으로 타이밍을 잘 맞춘 셈이다. 당시 나는 여름휴가로 고구려, 발해 및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주제로 중국 동북 3성을 훑고 돌아왔던 차였다. 그리고 그 중 기억에 남는 이벤트 중 하나가 윤동주의 향기가 서려 있는 용정에서 만난 조선족 아저씨와의 만남이었다. 겁도 없이 여자 혼자서 이 무서운 곳을 찾아왔냐며 과한 친절을 베푸시던 아저씨와의 대화에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여기에는 감히 적을 수 없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으니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북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생기던 터였던 지라 그 멘토 내가 하겠다고 얘기하니 막내의 표정이 굉장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다른 팀에서 반강제로 지원한 아이들은 전부 사원급이었고 당시 과장이었던 나는 짬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어떤 대학생의 멘토가 될지 우선권이 주어졌던것 같다. 대략의 인적사항을 읽다 보니 내가 졸업한 모교에 재학 중인 한 아이가 눈에 밟히길래 그와 매칭을 부탁했다. 이름은 분명 여자였는데 실제 만나보니 남자아이였다. 사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관계로 그 와의 일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첫 만남은 분명 어색했을 것이고, 친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남산에 놀러 가서 돈까스도 먹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여러 미션들을 수행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날 가장 많은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그때의 나는 전문적인 상담인은 커녕 상담 자체에 관심이 1도 없었던 때였기에,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순전히 나의 북한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지원을 했던 것이기에, 지난 수업시간에는 참으로 화끈거렸다. 


다문화상담_주희연교수님  학습자료 中


다문화 상담 시 내담자에게 해서는 안 될 질문들, 특히 탈북민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질문들을 마구마구 던져버렸던 완벽했던 멘토. 심지어 우리가 아주 많이 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한국에 왜 왔으며 그리고 탈북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까지 부탁했었으니 정말 말 다했다. 그의 정확한 답변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질 않으니 원하는 답을 들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북한의 군대는 어떤지, 배급시스템은 어떤지 등등 그의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질문들도 마구마구 던졌다. 북한사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서였는지 말투까지 바꾸기 위해 노력하던 아이에게, 철저히 묻는 중이던 과거의 기억들을 파내기 위해 나는 대체 무슨 실례를 범했던 것인가...나는 왜 그다지도 철없는 멘토였던 것인가.....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교수였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전혀 불행하지 않음을 계속 강조했다. 내가 동정한다고 느꼈었던 모양인지. 하... 정말 최악이다. 생각해보니 이 프로그램이 1년 만에 없어진 것은 혹시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P.S 대문사진

[중국 길림성 조선족자치구 용정, 버스터미널, '14.7.30]

 ☞ 조선족아저씨 만난 곳= 사건의 시작점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규제, 그래서 잃어버린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