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천재 백사장>의 뱀뱀의 바가지 사건을 보고
어제 <장사천재 백사장>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보던 나는 문득 출연진 뱀뱀의 행동에 충격을 받게 된다.
무엇이냐 하면, 뱀뱀이 수레 이용비를 네고하는 괴정에서 바가지를 쓰게 된 사건이다.
백종원이 뱀뱀에게 바가지를 썼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뱀뱀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처음엔 제대로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가격인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수레주인을 불러 이용하고, 시세의 5배에 육박하는 돈을 그대로 지불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친구라며 사진도 찍고 하하 호호 웃기까지.
나였다면, 외국인을 무시해서 이렇게 바가지를 씌우는구나 하며 화가 먼저 났을 것이다. 다시는 당신을 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을지도 모른다. 밤새 나를 무시한 수레주인을 저주하며 친구들에게 연락해 불쾌함을 토로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엔 이해가 안 되리만큼 철없어 보이던 그 모습이 지켜볼수록 점차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걸 나무라지 않고 놔두는 백종원도 대단해 보였다.
수레주인이 잠시사이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나자, 지불한 돈으로 옷 샀나 보다며 기뻐하기까지. 그들은 나와 다른 품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건 몇 푼 조금 손해 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는 마음가짐. 인생을 중요하지 않은 것에 허비하지 않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인행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난 조금이라도 내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공정하지 않으면 부들거리며 밤을 새우고, 부당한 일에 가슴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피해자로 기억되는 일이 하나 떠오른다. 몇 년 전 길을 가다가 2층 테라스에서 떨어진 담뱃재에 맞을 뻔한 적이 있다. 다행히 빠르게 피해 그 뜨거운 담뱃재를 맞지는 않았지만 너무 놀랐다. 그러나 당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놀란 마음에 어버버 하며 그냥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이후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물론 위험하게 그런 행동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 그 사건의 중요한 이슈였을 테지만, 당시의 내겐 아무 사과 없이 넘어간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컸다.
‘내가 만만해 보인 건 아닐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담뱃재를 맞든 말든 무시하고 그렇게 피해를 주고 다니는 사람인 건가?’, ‘다시 2층에서 담배 피우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 혼쭐을 내줘야 하지?’
모든 생각은 내가 피해자이고, 정당히 복수하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로 이어져 그것이 머리를 잔뜩 채워 괴로웠다.
그 일뿐만 아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주변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열받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어 괴롭혔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쟤는 저렇게 놀러 간다고?’
이제와 보니,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면서 나의 피해를 주장하고 감정을 증폭시키기보다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담뱃재를 그렇게 떨구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위험합니다.‘
‘제가 이러해서 이 부분을 기한 내 마무리하기가 어려운데, 혹시 여유가 되시면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나의 마음에서 사건의 중요도를 낮추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좀 놀랐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 사람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앞으론 주의하겠지.’
‘저 사람도 바쁠 땐 힘들게 일했을 텐데, 쉴 때 제대로 쉬는 게 좋지 뭐. 내 일에 더 집중하자.‘
사실 보통의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 행복할 수 있는 일상에서 불필요하게 감정을 증폭시키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삼는 바람에 자신을 더 괴롭히고 있진 않은가?
어쩌면 ‘오른쪽뺨을 맞거든 왼쪽뺨을 내어주라’는 성경의 말은 이런 관점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앞선 어른들이 늘쌍 이야기하듯 나의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도 같다.
굳이 애써서 피해자가 되지 말자. 삶은 뱀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