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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Apr 05. 2023

굳이 천천히 안 갈래요


얼마 전 ‘마음속도 늦추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시간강박을 내려놓고, 그만 천천히 지금을 즐길 줄도 알자는 내용의 글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쓸 때 미처 간과한 부분이 있다.


1. 시간강박 인생은 사실 나의 자부심

내 비록 10대와 20대에 TV, 드라마, 소설, 여행을 온전히 여유롭게 즐기지는 못하였으나, 그 덕에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고, 직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이전 글에서 나를 ‘제멋대로에 성질 급한 어른‘으로 표현하였으나, 실은 난 ‘책임감 있고 열심히 사는 어른’이 더 맞다. 드라마 하나 꾸준히 보지 못했을지언정 나의 본분인 ‘공부’, ‘일’에는 충실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게임, 놀이, 취미에 쉽게 물들지 않았던 나의 유년기는 분명 힘들었으나, 그렇게 인내하였던 내 과거가 자랑스럽다. 남들 놀 때 놀지 못하였음을 후회하기보다, 남들 놀 때 놀지 않았던 지난 나를 자부심으로 여길만하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 지금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시간강박은 죄가 없다.


2.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

지난 글에서 나는 행복이란 현재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마음속도를 늦춘다고 될 일인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고, 남들보다 잘 되고 싶다. 그래서 퇴사도 했건만, ‘속도를 늦추자’라니? 택도 없는 소리!


‘속도보다 방향’이라고들 한다. 내가 행복을 놓치고 살았다면, 그건 서두르는 내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지점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둘러 빨리 가도, 천천히 가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달리면 행복하다. 중요한 건 방향이었다.


빨리 가고 싶은 내 마음을 굳이 늦추기보다, 어느 방향이 좋을지 고민하고 도전하면서, 하나라도 더 빨리 실패하는 게 좋겠다.



굳이 천천히 가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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