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성질이 급하고, 무엇이든 빨리 해내야 하고, 쉬는 시간엔 뭐든 해야 할 것만 같아 불안한 사람이었다. 조금 더 알차게 시간을 써야 한다는 시간강박이었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조차 피하곤 했다.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부모님 핑계를 대가며 못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고, 고등학생 땐 증세가 심각해져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공부만 했다.
이런 증세는 책을 읽을 때에도 드러났다. 소설책을 펴면, 첫 페이지 몇 장을 읽어 본 후 곧장 마지막 페이지로 가서 결말만 확인하고 닫았다. 중간 과정이 궁금하면, 그 부분만 찾아서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빨리 감기를 해 스토리만 파악했다. 그조차 아까울 땐, 블로그에 올라오는 ‘스포주의‘가 달려있는 게시글로 드라마를 마스터했다. ‘영화 볼래?‘하는 썸남에게 ’나 영화를 안 좋아하는데..‘하며 의도치 않은 철벽을 칠 정도로 영화 보는 시간마저 아까워했던 나.
그뿐인가, 말습관에도 그 성질이 반영됐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참을성도 없고, 말할 땐 앞뒤를 거르고 중요한 부분만 말하는 버릇이 있어, 사람들이 내 얘기를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강박적으로 살아온 내 지난날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이 없고, 제대로 읽은 책이 몇 권 안 되고, 마음에 깊이 남는 영화와 드라마가 없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줄 모르는 어른이 된 것에 대한 것 등등.
나는 그런 나의 지난 아쉬움들을 발견할 때마다, 뒤늦게, 또 조급하게, 그것들을 하나하나 채워갔다. 친구들을 마구 사귀고, 책을 마구 읽고, 영화와 드라마도 두 번, 세 번씩 봤다. 그마저도 조급하고 강박적이었지만, 지난 아쉬움을 달래 보려 다시 열심히 살아나갔다.
그렇다고 이런 내가 시간을 알차게 써가면서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보다시피 그렇지만은 않다. 그냥 제멋대로에 성격 급한 어른이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머지 회사도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누구보다 빨리 은퇴해 버린 어른. 퇴사하고도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며 조급하게 살아가는 어른.
인생을 잘 사는 것은 이 순간,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들 한다. 행복은 조급하게 빨리 움직여서 도달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도 마음의 습관이란 게 잘 바뀌지 않는지 나는 늘 미래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다. 퇴사하고 시간이 많은데도 시간에 쫓기고 있는 내 모습이 퍽 우습다.
쉬이 바뀌는 마음은 아니겠지만, 매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속도를 계속해서 늦춰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