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머리가 굳어서 못해.
난 암기력이 딸려서 어려워.
문과라서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해버릇을 안 해서.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단정 짓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어때?’하는 제안에 ‘난 이래서.. 저래서.. 안돼.’라며 스스로 한계 짓고 단정 짓는 습관을 가진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물론 나라고 그런 적 없지 않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싫고, 나도 핑계투성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핑계만 대고 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핑계 대며 사는 어른들 치고 멋들어진 어른 없더라.
몇 년 전 tvN에서 방영했던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 선생님을 보고 받은 감명이 아직도 내내 생생하다. 비행기에서 잠 한숨 자지 않고 14시간을 내리 공부하던 모습. 여행하는 국가의 언어를 조금씩이라도 익혀가려고 노력하던 모습. 후배들에게 맡겨두고 편하게 여행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도전을 더 유의미하게 생각하던 이순재 선생님.
‘나이 먹어 머리 굳으면 공부 못한다. 공부할 시간 있을 때, 젊을 때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믿고 살았는데, 이순재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아차! 싶었다. 왜 나이 먹으면 머리가 굳는다는 것인가? 나이 들면 공부할 시간이 왜 없다는 것인가? 이순재 선생님은 그런 핑계 없이 매 순간을 도전하는데. 그럼 이 분은 그저 돌연변이란 말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남들보다 지식 습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처음 해보는 사람은 해보지 않은 것이라서 더 호기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시간을 통으로 내기 어려워 짬짬이 공부를 해서 더 재미를 붙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어 어차피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핑계 대는 나는 그냥 멋없는 게으름뱅이였을 뿐.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이라도 멋있게 살아보려고, 뭐든 ‘그래? 해볼까?’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 이거 해봐. 저거 해봐.‘하는 말에, 당장 할 생각이 없어도, 솔깃하지 않아도,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도, ‘내가 또 하면 잘하지.’라고 말이라도 한다. 그만큼 내 한계를 단정 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나는 스스로 만든 벽에 갇혀 작은 정원을 보살피기보다는, 너른 들판을 발이 아프게 뛰어다니며 들풀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