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어린이 때부터 얼마 전까지 나는 비혼주의였다. ‘결혼=불행’이라는 공식이 진리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을 포함해 가족이라는 조직이 화목하게 하하호호하기만 한 걸 본 적이 없었다. 갈등기피성향을 가진 나는 ‘각자 혼자 살면 되지, 굳이 왜 같이 살면서 서로 힘들어하는 거야?’하며, 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 다짐하곤 했다.
보통 독신을 고집하던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는데, 나에게 그런 일은 없었지. 스물 후반까지도 나는 비혼주의를 고집했다. 서먹서먹한 가족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욕심 많고 이기적인 내게 ‘나의 일부’를 담보로 하는 결혼이란 결코 다짐하기 쉬운 일은 아니더라. 어영부영 결혼하면 시월드가 펼쳐질 것이고, 어영부영 아이를 낳으면 10년이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란 걸 너무도 많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비혼주의를 접게 됐다. 이 사람이라면 날 고생시키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물론 여태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3년 넘게 만난 이 친구는 가족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믿고, 이해해 주는 보살 같은 사람이었지. 나의 감정기복과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편안한 사람. 내가 신나서 춤을 추면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뒷구절을 따라 부르며, 기분이 좋지 않아 바닥에서 징징대며 우는 날에는 꼭 안고 보듬어주는 친구. 하다못해 집안일마저 혼자 다 하겠다며 자처하고, 게으르게 누워있는 내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친구. 이렇게 품이 넓은 사람이 있을까도 싶었다.
이렇게 편안한 반쪽을 찾고 나니, 막연히 가지고 있던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결혼을 피하고자 했던 것은 갈등의 회피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족 간의 갈등을 자주 목격했고, 그런 갈등의 원인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족을 만들지 않으면 힘들 일도 없다는 건, 혼자 지내면 사람 스트레스가 없겠다는 히키코모리적 발상일지 모른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서로 맞춰가는 시간을 가지면서, 갈등이란 걸 알콩달콩 잘 해결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결혼=갈등=불행’이라는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된다면, 갈등이란 것에 겁먹어 물러설 필요 없을 만큼 결혼이란 게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나는 비혼주의를 내려놓는다. 다만 매일 브런치 활동을 하다 보니, 시월드, 이혼, 육아의 고통과 고단함에 대한 글이 줄줄 펼쳐져 아직도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님들이 이런 겁쟁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행복하고 알콩달콩한 글도 많이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에 슬쩍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