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낙선작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30여 년을 살았습니다.
내게 엄마는 오로지 가족만 생각하고 본인을 돌보지 못하는 작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노래를 하고 싶던 어린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께 녹음테이프를 사달라고 말하기 어려워 한 차례 꿈을 놓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진 직장은 결혼과 동시에 추억으로 덮어야했습니다. 두 딸과 남편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하고 싶었던 공부조차 제대로 한 번 하지 못했습니다.
난 오로지 나만 생각해야겠다고, 그래서 엄마와 달리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습니다. 학창시절엔 결석 한 번 없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겁나더라도 물러서기보다는 용감하게 행동하려고 했어요. 남자를 믿지 않았던 것은 당연했고요.
엄마도 당신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는지, 늘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권했습니다. 결혼도 굳이 하지 말라고, 새로운 도전도 해보라고, 우리 딸은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늘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그녀입니다.
당신은 시큼한 포도를 집어드시면서도 내겐 샤인머스캣을 내미는 엄마. 나는 오래도록 그런 엄마를 닮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썼나 봅니다. 연애할 때 상대에게 양보하고 져버리는 내 모습에 당신이 비칠때면,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서러워져 눈물을 쏟기도 했답니다.
그래서일지 나는 친구를 집에 데려가던 날,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엄마에게서 내 모습을 똑 들켜버릴까 봐요. 소심하고 투박한, 멋없는 엄마를 보고 나를 판단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낡은 내 옷을 입고 나와 친구에게 어서 오라 부끄럽게 인사를 건네고는, 집이 정신없다, 지저분하다, 춥다며 자꾸만 걱정을 합니다. 친구에게 뭐라도 먹여야 한다며 바삐 상을 차리면서, 내게도 얼른 와 친구를 챙겨주라며 언성을 높입니다. 나는 ‘그냥 놔두라니까!’ 하며 괜스레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엄마, ‘울 엄마 너무 유난스럽지?’라는 나의 멋쩍은 한 마디에 내 친구는 외려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합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온갖 배려를 다하는 당신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먹지 않을 반찬 하나도 허투루 내지 않고 깔끔하게 차려내는 당신이,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작은 예의에는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당신이 멋지다고요.
나는 그제야 당신의 장점을 봅니다. 몸에 익은 타인에 대한 배려는 멋없는 조아림이 아니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켜낸 당신만의 품격이었습니다. 음식차림 하나에도 예민하게 신경 쓰는 모습은 당신이 지켜낸 자존심이었으며, 내게 쏟아지는 잔소리는 당신이 물려주고 싶었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세심하지 못한 천방지축 나는 당신을 닮으려야 닮을 수 없는 못난 아이일 뿐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당신을 온전히 닮을 수 없고, 아무리 애써도 당신을 조금이라도 닮지 않을 수가 없는 나입니다.
이제야 당신의 위대함을 봅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모두 사랑해 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 덕분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서도, 내게 비치는 당신의 흔적만큼은 이유 없이 미워하였습니다.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당신을, 싫다고 짜증 내도 기어이 출근하는 내 손에 떡을 하나 쥐어주어야 마음 놓는 당신을, 멀리 울산에 간다는 나에게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당신을, 나는 이제야 겨우 사랑합니다.
이제는 나를, 당신을, 남김없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이 글로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공모전에 참여했습니다.
결과는 낙선이었습니다. 공모전 성격에 맞는 글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 글을 쓰고 고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꽤 마음에 드는 글이었거든요.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지면을 빌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