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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Jan 10. 2023

왜 우리는 회사를 다닐까?

(잘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회사생활

'근로', '노동', '근무'.

적어도 대한민국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내 자유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때론 사생활에 대한 자유까지. 그렇다면 '회사원'들은 왜 자유를 희생하고까지 아등바등 회사를 다닐까? 지난 나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며 그 이유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1. 월급

원시시대 사람이 사냥감을 찾아 나서듯, 회사원들은 매일 아침 출근을 한다. 먹고사는 것. 직업에 그만한 이유가 있을까? 월급봉투가 없어진 요즘 시대엔 통장에 찍히는 7자리 숫자가 자유의 희생을 보상해 준다.


이 월급이란 것이, 당장의 내 생활을 바꾸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쥐꼬리'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이겠지. 게다가 나는 소비가 많지 않은 편이었고, 대출도 없었다. 그래서일지 내겐 통장 잔고의 자릿수에조차 영향을 주지 않는 월급이 그다지 흥분되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여 0,000,000원 입금'이라는 알림 메시지는 순간이나마 위로가 된다. 자유의 희생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어지는 보상이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자유를 희생해서 얻은 이 월급, 돈으로 자유를 다시 살 수 있다. 아마도 등가교환을 한 것 같다.


2.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사람들과의 얕고 넓은 관계를 좋아하는 나는 회사에서 다양한 '얕은 관계'를 '강제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월급보다도 회사에 기대하는 더 큰 부분이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이나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재미를 얻는 것이 있었다. 더구나 조직에서는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서로 예의를 (강제로) 지킬 수 있는 동료관계가 좋았다.


특히나 아버지 뻘에서 조카 뻘까지, 다양한 세대와 교류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인에게 굉장한 혜택이다. 바깥에서는 어울일 일도, 굳이 대화를 할 수도 없는 나이대의 사람들과 팀을 이룬다. 이 다양한  나이대 별로 살아가는 이모저모를 보고 있자면 정말 흥미롭다. 나이 차이가 나는 상사와 농담이 통하는 기분이 들 때면, 친구들과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짜릿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배울 점도 많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선배들에게는 인생의 꿀팁이라거나, 투자지론을 들을 수 있다. 막 입사한 후배들에게는 요즘 세대의 트렌드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일지 팀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하고 퇴근하는 길이면 헛헛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 아무튼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

회사에서는 어쨌든 출근하고, 퇴근하면 생산적으로 하루를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일이 없어 메신저를 종일 하다가 퇴근하는 날도, 일이 쌓여 야근하다가 지쳐 퇴근하는 날도, 어쨌든 회사에 다녀온 하루다. 출근, 퇴근 잘했으면, 열심히 잘 한 하루다. 어쨌든 뭔갈 한 하루다.


평범하게 출근을 하고, 평범하게 점심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또 컴퓨터를 열심히 바라보다가 퇴근하는 일. 이렇게 규칙적인 하루를 강제로 보내야 하는 회사원의 삶은 어쩌면 가장 건강한 삶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 취업 전까지 내내 불면증을 앓다가 회사를 다니고는 머리대면 잠드는 사람이 됐다. 제 때 일어나 제 때 밥 먹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를 가능케 해 주는 것이 회사다.


오늘 출근을 선택한 사람들은 회사의 고됨과 비참함보다 회사가 주는 가치에 더 집중한 것일 터, 회사로부터 도망친 나는 그저 그들의 선택에 존경을 보낼 수밖에.

신입사원 때, 나의 출근길. 점점 무거워지는 출근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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