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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Feb 10. 2023

이제라도 책이 좋다


어릴 적 언니는 책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람세스 다음 편을 기다리는 지경이었으니, 말을 다 했다.

그런 언니가 독서광으로 동네 어머니들의 관심을 끌 때, 세 살 어린 일곱 살의 나는 책이 싫었다. 언니가 이미 읽은 책에 흥미도 가지 않았고, 언니를 따라잡을 자신도 없었다. 언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해리포터가 전 세계를 휩쓸 때, 한국어판 초판 1쇄를 구해 온 가족이 푹 빠졌을 때에도, 나는 별 흥미가 없었다.  언니가 4권을 읽을 때, 내가 1권을 읽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책을 꽤 멀리하고 지냈다. 그런 중에도 읽는 책이 있었으니, 주로 '자기계발서'였다. 나는 '인생방법론'을 담은 자기계발서 몇 가지는 흥미롭게 읽었다.

인기 있어지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인기 있어지는 방법'같은 만화책을 사 읽기도 하고, 쫄보 같은 내 모습이 싫어서 '용기'라는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그렇게 자기계발서에 막 취미를 붙일똥 말똥 할 즈음, 당시 유행하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소녀시대 서현이 나오던 시절이다. 서현은 서점에서 '저는 독서가 취미예요.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와! 나도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그녀에게 악플이 어마무시하게 달렸다.


'자기 계발서 읽는 게 무슨 독서라고. 책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계발서 취급 안 한다.'

'책 읽는 척하는 것 역겹다.'


그 악플을 본 나는 충격에 마지않았고, 팔랑귀에 쿠크다스였던 나는 자기계발서마저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로 교과서와 문제집 외엔 책을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을 도서부로 활동하면서도 제대로 읽은 책이 채 10권이 안되었던 것을 보면 고집도 고집이다.(아마도 그 10권은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읽었겠지.)


그렇게 절독(?)하던 나는 27살의 어느 해, 자기계발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왜냐구? 회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다. 회사에 희망이라곤 버리고 살아야겠다며 집어든 마크 맨슨의 '희망 버리기 기술'이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책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자기계발서에 푹 빠졌다. '희망 버리기 기술'은 물론이요, 그 전작 '신경 끄기의 기술'이 너무나도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말하는 김에 마크 맨슨의 띵언을 공유해보고 싶다.


중요한 건 똥덩어리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똥덩어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자기계발 입문을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이 책을 바라보라 하리..


캬.. 아무리 봐도 인생 명언이다. 아무튼, 내가 좋은 게 좋은 거지, 왜 남들의 시선에 끌려다녔는지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만큼 시절이 각박했거나, 내가 남의 악플에도 찔려하는 굉장한 쫄보였던 탓이겠지 뭐. 책이란 게 경쟁하듯이 읽는 것도, 남들에게 보여주자고 읽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괜한 고집으로 책을 멀리한 지난 시절이 아쉽다.


어쨌든 다시 자기계발서의 세계로 돌아온 나는 정말 매 년, 매 해 다시 생기롭게 살아나가고 있다.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자신감과 열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권에 좋은 친구, 한 권에 좋은 선생님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느낌은 정말 짜릿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서를 시작으로 독서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에세이, 소설도 열심히 읽어나가고 있다. 특히나 퇴사하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니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조금 늦었을지 몰라도, 책과 함께 남은 나의 인생을 재밌게 만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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