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픽션입니다. 허구입니다. 실제 사건 및 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 회사 고대리는 내가 본 후배 중에서 단연 최고다. 그는 첫 입사 시부터 어떤 일도 허투루 한 적이 없다. 그와 함께 일했던 3명의 부서장과 40명 이상의 부서원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는 일당백이라고, 성격도 참 좋다고.
그와의 대화도 썩 즐겁다. 보통 어린 친구들에게 ‘연애는 안 하니?’하고 물으면, ‘실장님! 그런 얘기하면 요즘애들 불편해해요옷!’하며 정색하거나, 멋쩍게 웃으며 불편한 기색인데, 우리 고대리는 “저 연애하는데요? 저 씨씨인 거 모르셨구나?”하며 밝게 대답한다.
블라인드라는 어플이 있다. 회사직원들 특히, 어린 직원들이 주로 불만을 토로하는 어플이다. 한 번은 고대리에게 물었다. “고대리는 블라인드 같은 거 안 해?”
고대리는 역시나 “그런 거 보면 정신건강 해칠 것 같아서 안 봐요 ㅎㅎ 다들 불만만 많고 스트레스 받더라구용~”하며 모범답안을 낸다.
고대리와 이야기하면 내 마음이 참 편해진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애들이 이만큼만 해줘도 내가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고대리가 잘한다기보단, 고대리만큼 못하는 다른 직원들이 한심하다.
근래에 블라인드에는 HOT한 게시물이 있다. 업무 능력 고려하지 않은 인사배치에 대한 불만글이다. 한 번은 고대리에게 물었다. "고대리는 경영 전공인데, 설비 관련 업무 하는 거 힘들지 않아? 지원업무 하고 싶지 않아?"
역시나 고대리는 정답이다. "처음에는 좀 힘들긴 했는데요, 하다 보니까 이제 재밌기도 하고 하더라고요. 뭐 순환근무가 다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ㅎㅎ" 고대리와 이야기하면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가신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한다. “실장님,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에 곧장 직감했다. 그가 퇴사한다. 사유를 채 물을 새도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던 고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을까? 내가 못 챙겼던 부분이 있었던 걸까?
누구보다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고대리가 퇴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