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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Feb 17. 2023

킹 대리 이야기(2편)

(주의) 이 글은 픽션입니다. 허구입니다. 실제 사건 및 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입사 후로 정말 열심히 지냈다. 주변사람들을 잘 챙기는 것이 나에게는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가끔 킹 받는다. 내가 아무리 도와줘봤자, 감사하는 인간들은 없고, 죄다 자기들 일 부탁하기 바쁘다.

커피 마시러 가는 저 놈은 자기 팀 인원 부족하다고 징징대는 이 대리가 아닌가. 커피마실 시간에 일해라, 눈치도 없냐. 나는 커피 사 오려고 일찍 출근하는데, 업무시간에 티타임이 필수인 이 대리가 참 얄밉다. 그래도 그런 티를 내진 않는다.

사실 실장이 제일 큰 문제라고 본다. 이 꼬락서니를 보고서도, 맨날 우리 팀에게만 일을 시킨다. 넵넵거리니까 호구로 보이다보다. 킹 받는다.


"고 대리는 연애 안 해?”


아- 반말부터 킹 받는다. 직급이라도 붙여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연애 좀 잘하게 인원이나 채워주시던지요. 일만 오지게 시키고, 지는 칼퇴하고, 내 연애사엔 갑자기 뭔 관심?

“저 씨씨예요 실장님 모르셨구나?ㅋㅋ”

차라리 이렇게 시원하게 말해줘야 꼰대들이 흥미를 잃는다. 괜히 어중되게 말했다가 자기들끼리 뒤에서 킥킥거리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다.

한 번은 실장님이 내게 블라인드를 하냐고 묻는다. 요즘 블라인드 안 하는 애들이 어딨 다고. 심지어 은퇴 직전인 분들도 블라인드는 열심히 본다. 게다가  나는 썼다 하면 베스트에 오르는 메인멤버다.

그뿐인가, 난 회사 익명게시판에도 꽤 자주 글을 올린다. 우리가 쇠 빠지게 일할 때, 할 일 없는 실장들이 자리에 앉아서 익명게시판을 열심히 새로고침 한다는 걸 안다. 다들 가만히 있으니까 진짜 괜찮은 줄 알았지? 매운맛 좀 봐라 이놈들아.

‘실장님 정신 좀 차리시길.’, ‘인사체계가 왜 이 모양인가요?’, ‘나만 일하는 것 같아서 현타 온다.’ 등, 야근하면서 악착같이 나의 킹 받음을 알리는 글을 올린다. 왕년에 에타(-에브리타임의 준말, 대학교에서 쓰는 커뮤니티-)에서 좀 날렸던 나다. 썼다 하면 블라인드 HOT게시물이 된다.


내 글엔 주로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옹호하는 댓글이 달리면서 통쾌함을 맛보곤 한다. 그러나 '글 내리세요. 그렇게 불만이면 본인이 그 일 해보시길..', '분위기 흐리지 마세요. 각자 다 사정이 있는 겁니다.'라는 식으로 저항하는 댓글도 있다. 회사 내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댓글로, 우리 회사가 어느 정도 발전의 의지와 여지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나만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장님에겐 “전 블라인드 안 해요. 스트레스받아서요.”라고 대답한다. 블라인드 한다고 말해봤자, 또, ‘이번에 올라온 그거~ 고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하며 답정너 짓을 할 게 뻔하다.  하- 그런데 내 대답에 내심 만족스러워하는 실장님 표정을 보니까 또 킹 받는다. 어휴 저 꼰대를 어찌할 꼬.


킹 대리 이야기 끝.




이 이야기는 불만은 있지만 눈밖에 나고 싶진 않은 실무자와, 어쨌든 자기가 틀린 건 아님을 확인받고 싶은 상사회사 내 생존기다.


나는 고 대리와 실장 모두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일궈온 회사와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하기를 겁내지 말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의 생각을 확인받는 대화는 결코 발전이 없다.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 발전적인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실무자도 마찬가지다. 불만이 있을 때, 두려움에 덮고 뒤에서 욕하기보다는, 상사에게 불편하든 좋든 정확한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괜찮은 줄 안다.


물론 당장 면전에 대고 서로 싫은 소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지만, 진정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쓴 것도 삼킬 줄 알아야 한다. 조직 내 누구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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