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지하철, 치열한 자리싸움

by 고정문

아, 왜 이렇게 옆으로 붙는 거야.

꽉 찬 지하철에서 앉을자리를 얻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편안한 자리를 잡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옆 두 자리가 비어있거나, 선을 지켜주는 사람이 앉아줘야 비로소 편안한 지하철 좌석이 완성되는 법이다.

나는 주로 차고지에서 출발했기에 좌석 제일 끝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이 말인즉슨 옆 사람 단 한 명만 잘 걸리면 편안한 귀가가 확실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탑승해 내 옆자리에 앉은 분들은 때로 편안한 귀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1인석도 안되게 잔뜩 끝자리에 기대 움츠리고 앉아있건만, 어찌 옆사람과 어깨가 닿는가. 왜 옆사람의 호흡이 느껴지는가 말이다. 너무나 꼬옥 붙어있는 팔뚝이 신경 쓰여 불쾌하기 짝이 없다. 팔뚝을 치우고 나면 옆구리에 저 사람의 팔이 닿을까 싶어 더 불쾌하다.

‘저 사람은 나중에 왔는데 왜 이렇게 몸을 움직여대며 끼어 앉는 거야. 1인분으로 할당되어 있는 선을 넘었네. 게다가 어깨도 시원하게 펴고, 유튜브도 신나게 보고 있네? 나는 이렇게 불편하게 0.7인석으로 앉아있다고...!’

이쯤 되면 이미 내가 진 것이다. 지하철 좌석의 점유란 불편한 사람이 지는 싸움이다. 불편한 내가 일어서 가기를 택하거나, 앉아서라도 가고 싶다면 그저 참아야 한다.

다음 정류장에서는 내려주길 기대해 보지만, 미동도 없는 짝꿍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져보려고 최대한 어깨를 좁혀본다. 아마도 내 라운드숄더의 원인은 8할은 지하철 때문 일거다. 옆 사람과 닿기 싫은 내가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흡사 지하철에서의 내 모습이 연상되는 강하늘 배우 짤


정 견디기 힘든 날엔 얼른 벌떡 일어나 저만치 문쪽으로 기대선다. 앉아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과 제일 밀착되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문쪽에 서있다 보면, 타고 내리는 승객들과 부딪혀 불편을 빚는 일이 생긴다. 어깨빵을 몇 차례 당하다 보면,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내릴 때 같이 내렸다가, 사람들이 탈 때 같이 타는 매너를 숙지하게 된다.

유의할 것은, 다시 탈 때 내 자리를 다시 점유하고 싶다면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의 문쪽에 서는 것은 좌석 맨 끝자리만큼이나 인기가 많아 호시탐탐 사람들이 노리는 자리다.

이렇게 소리 없는 자리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하철에서, 예민한 나는 함께 탄 사람들이 내 자리를 넘어오더라도 불쾌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일단 그들이 악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저 편한 대로 본능에 충실했을 뿐, 그들은 나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되뇐다. 그리고 나도 최대한 본능에 충실하며 편한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지하철을 매일 타며 고뇌하다 보니 점점 그 불편과 갈등이 적응되었다.

함께 편하자고 이용하는 공간이요, 사람이 적었다면 운행하지 않았을 지하철이다. 함께 끼어 타는 승객이 없다면 지하철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던 것. 그 모든 지하철의 특성들을 불쾌해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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