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디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지역이전을 한 공기업에 근무하다보니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울산에서 살게 됐다.
지난 몇 년의 울산살이를 돌이켜 보면, 남들은 괴로워하는 타지살이가 내겐 큰 축복이라 여겨진다.
울산은 교통이 불편하다. 나 같은 뚜벅이들은 차 없이 울산, 특히 여기, 우정혁신도시에서 지낸다는 건 웬만한 도시의 삶은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기로 악명 높은 울산에서, 내가 지내는 이 동네는 가장 버스가 적은 지역인 데다, 근방 5km 내에 대형마트나 서점, 백화점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울산에 정착하면서 비자발적으로 도시의 인프라를 포기하게 되었다.
퇴근길에 지나치지 못했던 카페를 포기하고, 금요일이면 불금이라며 불러내던 서울 친구들과의 번개를 포기했다. 즐겨 찾던 커피빈의 헤이즐넛 아메리카노와 타이거 슈가의 밀크티를 포기했다.(참고로, 현재 울산에는 커피빈과 타이거 슈가가 없다.) 책은 안 읽어도 친구들을 기다릴 때면 늘 기웃거리던 교보문고를 포기했다. 세상 힙한 가게는 제일 먼저 들어오는 연남동을 포기했다. 할 일 없으면 드나들며 카드실적을 채우던 신촌역의 편집샵을 포기했다. 이쯤 하자.
이렇듯 아쉬운 게 많은 울산이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나는 꽤나 이런 삶에 잘 적응해 버렸다. 마치 나는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듯. 서울의 문화를 누리러 꾸준히 서울에 올라가는 회사 동료분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나 많은 미련은 없었던가보다. 그다지 서울살이에 대한 그리움이나 필요가 없다.
그렇게 딱히 도시의 인프라를 누리지 않으니, 나는 혼자 있는 걸 꽤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 사람이 아니면 딱히 만날 친구도 없는 무연고 울산에서, 나의 선택은 나와 더 친해지는 것이었다.
집은 그냥 잠만 자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내가, 집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려 가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침대, 책상, 소파, 몇몇 가구를 하나씩 구입하니 방이 좁아졌다. 그래서 더 넓은 방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저렴한 울산의 월세를 적극 활용해, 서울에선 꿈도 꾸지 못할 1.5룸 오피스텔에서 쾌적하게 지내는 행복한 집순이가 되었다.
이전 같으면 악착같이 누구라도 만났을 시간에 테트리스를 하고, 독서를 하고, TV를 봤다. 글을 쓰고, 요리도 했다. 내가 정말 즐기지 않을 법한 것들이 취미가 되었고, 누가 불러내도 꽤 자주 거절할 정도로 혼자 지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서울에서의 삶보다 이렇게 집순이로 지내는 울산에서의 삶이 더 내게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편안하다. 어쩜 서울에서 악착같이 인싸가 되고 싶었던 나를 안쓰럽게 본 누군가가, 너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고, 너 자신을 제대로 알라고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나.
이제는 퇴사를 하고 울산을 떠나도 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이곳 울산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물론, 집에만 콕 박혀 히키코모리로 지낸 것은 아니고요, 울산에서 글을 쓰며 사귄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울산이 더 좋아지게 해 준, <글쓰기모임 w>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