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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문 Mar 14. 2023

알바생이 일을 너무 잘함


‘알바생이 일을 너무 잘함’

웹소설 느낌의 제목을 지어본다. 내 아르바이트 생활 한 문장 요약이다.

제목처럼 나는 알바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훗. 병원 선생님들께서 나와 함께 일했으면 하시고, 벌써부터 칭찬이 자자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의상 말해주시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내심 뿌듯하고 어깨가 올라간다. 직장생활을 3-4년 한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그래, 나는 고스펙 알바생이다.

다년간의 민원응대에서 온 고객응대법, 전화매너, 문서작업의 퀄리티, 하다못해 전화기에 전화번호를 누르는 속도까지. 손만 덜어주면 되는 단순노동일지라도 나의 일머리가 어디 가진 않더라.

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조금은 뺀질거리자고 다짐했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하지 말자. 시키는 일만 하자. 나대지 말자. 하지만 그 성격 어디 안 가더라. 오히려 가만히 앉아있는 게 더 힘들다.

척하면 척 알아듣는다. 환자분들 안내도 알아서 잘하고, 전화도 잘 받고, 주변정리도 싹싹하게 하고, 엑셀 문서 수식을 고쳐드리고, 프린터도 고치고, 퇴직하시는 분의 연금계좌도 개설해 드린다.

4년 차 직장인일 땐 당연히 알아야 하고, 당연히 잘해야 했던 것들이, 아르바이트생인 지금은 ‘와! 이것도 할 줄 알아?’하는 일들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칭찬해 주시니 새삼스레 나의 능력치를 다시 보게 된다.

웹소설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이런 느낌이다.

<Lv.99 고정문>

ㅇ 직업 : 모험가

ㅇ 힘 : 50/100

ㅇ 민첩 : 80/100

ㅇ 체력 : 80/100

ㅇ 지능 : 80/100

ㅇ 공격력 : 80/100

ㅇ 방어력 : 99/100

직업도 고작 모험가(백수)인 캐릭터가 쓸데없이 스텟만 높은 느낌이랄까...

이 정도 사기캐는 아닐지라도 알바를 통해 나의 높은 스텟을 확인하며 ‘아, 나 이런 거 잘하는 사람이었지!’, ‘이 정도 퍼포먼스는 되는 사람이었지!’, ‘그래, 나 고대리였어!’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다.

반토막이 난 월급의 단순노동 아르바이트. 낮은 자리로 와보니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인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얼마나 내가 성장해 왔는지가 보인다. 나의 과거를 긍정하게 되는 아르바이트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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