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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식 Apr 11. 2018

피노키오의 꿈

말하는 목각 인형, 피노키오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증과 제보가 잇따르자, 흥미를 느낀 한 방송국에서 취재에 나섰다.

소문의 진원지는 산속에서 자연인처럼 홀로 사는 한 노인의 집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취재진은 경악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손님이 많네요!”


혼자서 움직이고 말하는 목각 인형, 피노키오가 정말로 존재했다.

방송국은 당장 검증에 들어갔다. 노인의 복화술도 아니었고, 어떤 기계적 장치도 아니었다.


진짜 나무 인형에 생명이 깃든 피노키오였다.

다만,


“저, 저기! 거짓말 한 번만 해볼래?”

“또 이러시네! 전 피노키오가 아니라니까요? 거짓말을 한다고 코가 길어진다는 게, 그게 현실적으로 말이 돼요?”

“아. 그, 그래? 미안.”


목각 인형의 이름은 철수였다. 노인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래도, 방송 타이틀은 피노키오로 나갔다. 파급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산속 노인의 피노키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실존하는 기적이라 불리며 세상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전 세계 생방송 무대가 꾸며지고, 피노키오의 신비한 모습을 전 인류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대에서, 노인에게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 어느 날 갑자기요?”

“예. 저는 그냥, 신께서 외로운 제게 선물을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신께서…”


노인의 대답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실 그런 대답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사회자가 이끌어낸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랬다.


10년 전 사고로 가족을 잃고 속세를 등진 노인이, 외로움에 나무를 깎아 목각 인형을 만들어 말벗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날 일어나 보니 목각 인형에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독실한 신앙심에, 신께서 선물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납득할 순 없었지만, 노인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결국, 사회자는 피노키오에게 물었다.


“저기, 너는 어떻게 생겨난 거니?


의자에 앉아 있던 피노키오는 어린 소년처럼, 나무 팔다리를 흔들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대답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요? 나무였던 시절부터요?”

“음… 처음부터 뭐든지 기억나는 대로 부탁할게.”

“한 9년 전이었나? 할아버지께서 정성을 다해 저를 조각하셨어요. 아마 조각은 처음이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못생겼지!”

“아, 그래? 내가 보기엔 귀여운데?”

“에이, 거짓말. 헤헤. 아무튼, 할아버지는 항상 저를 애지중지 아끼셨어요. 혼자서 말도 안 되는 대화도 많이 하셨고요. 하하” .

“그래그래.”

“그러다 한 5년쯤 전? 새벽이었어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러 신이 찾아왔어요!”

“신?”

“예! 할아버지는 주무시느라 기억 못 하시지만, 분명 그건 신이었어요! 신은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때부터 저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죠! 더는 할아버지 혼자서 대화할 필요도 없어졌고 말이에요! 하하.”

“으음…”


결국, 결론은 신이었다.

이 방송으로 인해 인류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피노키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과학자와 연구진이 피노키오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아앗! 그렇게 아프게 만지지 마세요! 저 아픈 건 싫어요! 그리고 나무가 불에 얼마나 약한지 아시죠? 조심해요!”

“아, 미안하다. 살살할게.”


실제 아이처럼 행동하는 피노키오를 정밀하게 해부한다거나, 가혹하게 실험해볼 순 없었다.

이미 방송을 통해 어마어마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끝내 과학은 피노키오의 정체를 증명해내지 못했고, 피노키오는 사랑스러운 신의 기적으로 남겨졌다.


이후 피노키오와 노인에게는 정말로 많은 일이 생겼다.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고, 전 세계를 순방하면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형성했다.

국가는 서둘러 피노키오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철저하게 보호했다. 또한 인형을 비롯한 관련 상품과 관광산업, 재단 설립, 자선 행사, 영화 출연 등 모든 것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지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피노키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노인이 믿는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부흥했다. 피노키오의 존재 자체가 신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또 한 가지 현상이 벌어졌는데, 바로 제2의 피노키오를 꿈꾸는 사람들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나무를 깎아 목각 인형을 만들었고, 간절하게 기적을 바랐다.

누군가는 외로워서, 누군가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누군가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은 제2의 피노키오를 꿈꾸며 나무를 조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소중했고, 누구든 피노키오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 했다.

대표적으로, 국가와 종교의 힘겨루기가 있었다.


종교는 신을 핑계로 피노키오를 총단의 관리하에 두기를 원했고, 국가는 국적을 핑계로 회피해왔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국적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국가는, 노인에게 피노키오를 자식으로 입양할 것을 권했다.

노인은 마다치 않았고, 피노키오는 정식으로 노인의 호적에 올랐다. 그 덕분에 피노키오는 학교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국가의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전 세계의 팬들은, 피노키오가 평범한 아이처럼 행복해지길 바랐지, 종교적인 상징으로 총단에 남겨지기를 바라진 않았던 것이다.


결국, 종교 총단은 국가와의 힘겨루기를 포기했다. 그 대신, 피노키오에게 공식적으로 신의 사자 자격을 부여하겠다며, 총단에 한 번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까지는 국가가 막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피노키오가 총단을 방문했다.

이는 종교인들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하나의 축제와도 같은 일이었다.


전 세계에 실시간 생방송으로 화면이 송출되는 가운데 수여식이 진행됐다.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너희들의 믿음이 하늘에 닿았구나.]


하늘 위에, 진짜 신이 등장한 것이다.


“우와앗!”

“오오오!”


진짜 신의 등장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또 감격했다.

피노키오는 신을 가리키며 발랄하게 말했다.


“우아! 그때 그 신이다! 모두 내 말이 맞죠? 그렇죠? 헤헷.”


신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피노키오를 향해 말했다.


[무엇이든 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우아! 정말요? 무엇이든지요? 만세!”


“오오오!”

“와아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신의 말에 환호했다.

피노키오의 꿈이 무엇인지는 뻔한 것이었다.

눈치 빠른 카메라는 피노키오와 노인의 모습을 번갈아 비췄는데, 노인은 어느새 감격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사람들도 드디어 피노키오가 꿈을 이루는 날이 왔다며 감동했고, 노인처럼 벌써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기뻐서 펄쩍펄쩍 뛰던 피노키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신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

.

.


“저는,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어요!”

“…”


피노키오는 나무였다. 다시 예전처럼 건강한 나무가 되고 싶은 게 당연했다.

행복한 피노키오는 다시, 소나무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인류는, 피노키오를 위해 한마음으로 자연보호를 약속했다.

나무들은 쑥쑥 자랐다. 마치 인간의 거짓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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