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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회장의 안목

by 김경섭

재벌 회장의 안목


과거에 이미 미래의 대가를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미리 사두었다든지, 아니면 재능 있고 가난한 무명작가를 발굴해서 키웠다는 재벌 회장의 안목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의 힘을 인정하지만, 여태껏 이야기한 대로 ‘안목’이라는 것을 나는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미안’ 비슷한 뜻으로 쓴다면, 그 ‘안목’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일등 복권을 산 사람이 대단한 심미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재벌 회장의 힘을 복권 당첨자의 운에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어폐가 있다. 재벌 회장은, 안목을 갖고 있지는 않아도, 미술작품의 가격에 영향력을 끼치고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유명 연예인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만 해도 그것을 잘 홍보하면 그 작가의 주가가 뛴다. 재벌 회장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산다는 것의 효과는 유명 연예인 10명 이상이 사는 것을 능가할 것이다. 게다가 그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싹쓸이하듯이 쓸어 담는다면 게임은 끝난다.


가장 돈이 많은 슈퍼 컬렉터는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작품값이 더 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미술시장 신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돈만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양과 날카로운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으로 더욱 추켜세우는 혓바닥이 똥색이 되는 기사와 발언들이 있다.


하지만 미술사에 대한 지식, 미적인 안목 등은 다 필요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대신 아주 많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그냥 현재 시장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유명한 작품들 100개를 싹쓸이하면 된다. 그중에 90개의 작품이 투자 실패의 결과가 된다고 해도, 나머지 10개의 작품의 가격 상승폭이 90개 작품의 손실분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상위 티어 작가들이 아니어도 된다. 무명작가라도 재벌회장 급의 슈퍼 컬렉터가 픽하면 단숨에 스타작가가 될 것이다.


예술성에 대한 찬사는 상황에 맞춰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떠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사연 하나 없는 작품이 있겠으며 예술가의 진심과 혼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 어디 있는가? 어떠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가격의 권위가 형성되면, 그에 맞춘 명분과 합리화는 만들어진다. 그것이 미술 시장과 가격의 본질이다.


공부하면 안목이 생기나?


여태껏 말해온 대로, ‘안목’? 애당초 그런 것은 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안목이 있는 ‘척’은 할 수 있다.


예전에 한 경제 전문가가 라디오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경제라는 것이 공부하면 할수록, “아 이것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먼저 치고 나가서 전문가의 권위와 전문 용어를 이용해 그럴듯한 주장을 펼치면 되는 것이구나!”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고, 예측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맞힐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나중에 가서 맞고 틀리고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두 개의 답안 중 나중에 결과적으로 정답을 선택한 절반의 전문가들에게 권위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미술의 ‘안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거의 데이터는 이미 결과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면 되고, 미래에 대해서는 예측은 자유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예측하면 된다. 나중에 가서 보면 누군가는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공부를 한다고 미술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자를 더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실력은 올라갈 것이다. 그 실력이라는 것을 ‘안목’으로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 인데, 그것은 숫자와 관련된 재능과 이너서클 안에서만 도는 정보에 닿을 수 있는 실력이지, 예술성에 대한 안목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보고 ‘어떤 작가가 뜰지.’의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자기가 지목한 사람이 나중에 뜨게 되는 얻어걸리는 사람과 미술 시장 작전의 고급 정보를 일찍 입수해 미리 자리를 선점하는 발 빠른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떤 작가가 뜰지는 단편적인 작품 하나를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싹수가 있는 작가들은 굉장히 많고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그래도 조금 더 확률을 높이려면, 작품 한 점 말고, 작업을 해 온 시간과 작품의 양, 그리고 메이저 갤러리가 힘을 싣고 있는 작가인가 정도를 주목하는 것이, 좋은 작가(나중에 돈이 되는 작가)를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공부하면 눈이 트이는가?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하고, 공부를 하면 눈이 확 트일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기대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안 보이던 게 갑자기 막 보이고 안 느껴졌던 게 느껴지고 그러지는 않는다. 물론 지식과 정보가 생기니 예전엔 무언지 몰랐던 것의 정체와 이유를 알게 되고 작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보적이고 지식적인 부분에 한정되는 일부분일 뿐이다.


많은 작품들을 보고 공부를 깊이 한다고 해서, 작품에서 예전에는 안 느껴지던 무언가 심오한 깊이감이 느껴지고 감동이 생기고 그러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느껴지는 것은 예전과 똑같다. 달라지는 것은, 예술의 다양한 개념과 그것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학습하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느낌에의 집착’과 ‘감동에의 열망’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부를 많이 하면 비로소 미술이 재밌어지고 미술을 정말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미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쌓이는 지적 성취감이 생기고 미술을 즐기는 척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할 수도 있다. “미술이 재밌어지고, 나는 미술을 정말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원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술이라는 영역을 태생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림 그리고 무언가를 깎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나름 감수성도 예민한 편이다. 예술적 감동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미술을 예전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고 해서, 예전보다 미술을 감상하는 게 더 즐겁거나 작품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동이 더 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식은 늘어나고 나름의 기준들이 정립이 되기는 했다. 그리고 막연한 자괴감과 권위주의적 신비감에서 벗어난 수확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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