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난해함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흔히 미술은 난해하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미술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동시대에는 그런 미술들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난해한 것일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오해나 착각 내지는 과대평가 혹은 지레 겁먹음 일 수도 있다.
고 난이도의 수학이나 물리 문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현대의 양자역학. 이런 것들은 난해한 것이 맞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해서 초등학생에게 설명하듯이 아주 쉽게 한다는 설명을 반복해 들어봐도, 이해가 살짝 갈 듯만 하다가 거기서 도저히 더 이상 진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수학이나 물리 영역의 매우 어려운 문제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 풀 수가 있는, 어렵지만 정답은 존재하는 난해한 것 맞다.
하지만 미술은 그것들과는 다르다. 허경영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차원적인 내용이라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는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재밌으면 웃고 호응해 줘도 되고 관심 없으면 무시하면 된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는 말이며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일 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저 벚꽃 나무 밑에 떨어진 잎의 정확한 개수와 그 위치에 떨어진 이유를 말해 달라면 그것의 답을 말할 수 있을까? 작품에 대해서 정확하고 쉽게 설명해 달라는 것은 이와 비슷한 질문일 때가 많다.
어떻게 그것들이 같냐고, 나뭇잎이 떨어짐은 어떤 의지가 관여된 것이 아닌 자연 현상이고 작품은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인데 그것들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들은 어떤 구체적인 의미나 의도를 가지고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의미와 의도가 필수 요건이라면 표현이 위축되고 손과 발이 묶일 것이다. 심한 제한과 자기 검열 하에서는 표현할 것이 너무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자유롭게 풍부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냥 어떤 표현하기 힘든 힘에 이끌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물들에 대해 그냥 별 의미 없는 것이라고 솔직히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작가는 별로 없다. 대부분 치장하기 마련이다. 알쏭달쏭한 명분이나 거창한 우주의 논리를 끌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나 재스퍼 존스처럼 자신도 알 수 없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이끌림에 의해 캔버스에 막 물감을 칠하거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잡히는 것들을 가져다 붙였는데, 이것을 설명하라고 하니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 리듬에 맞춰 흥겨워 춤을 춘 사람에게 그 동작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는 것과도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난해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난해하게 느끼는 것이다.
미술에 어떤 심오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의도 확대의 오류’가 될 수 있고, 그것을 말로 설명해 달라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미션일 때가 많다. 미술은 그저 시각적인 결과물인 것이며,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는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강요하는 것 일수도 있다. 그저 한 줄 허무개그를 좋아하고 심각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고 깊숙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것과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미술에 꼭 심오함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것에 대한 강요는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미술도 있지만 안 그런 것도 있고 안 그런 미술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미술에 기본적으로 심오함을 기대하는 데서 이미 첫 단추가 어긋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오함이 없다면 가치가 없는 것인가? 예술가들은 심오함을 꼭 추구하지는 않지만 가치는 반드시 추구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심오함이 없다면 가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미술에 심오함을 요구한다. 그러니, 많은 작가들이 자기도 이해가 안 되는 작가노트를 붙잡고, 애써서 거품 같은 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