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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가 어려운가요?

by 김경섭

추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추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말 그대로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려 하거나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느낌이나 감동을 받으려고 하니까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이다. 원래 답을 생각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서 툭 던진 문제인데, 거기서 무슨 심오한 의도를 찾으려고 하니 사단이 안 날 수가 없다.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서 툭 던졌다.”라고 했다. 이 표현을 두고 또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고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언어라는 것은 100% 화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듣고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해석될 수가 있으므로.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아무 의미도 없이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서 툭 던져놓을 수 있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작품을 왜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큰 가격이 형성될 수가 있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이 미술을 더 어렵게 만드는 ‘엄숙주의’ 일수도 있다. 왜 꼭 진중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 또한 고정관념과 강요 아닌가? 진중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의미하다고 해서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무의미=무가치, 이렇게 많이들 생각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무의미함의 의미를 발견해 내고, 무의미한 것이 무가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설명하기가 참으로 힘든 무언가. 그것을 그냥 표현한 것일 뿐이다.


작품에 작가 정보는 필수 인가?


예술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고, 특히나 추상화라는 것은 곱하기 10이다. 작품 자체 만의 감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보가 있을수록 더욱 풍부하게 해석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정보에 의해 해석이 제한되고 한 방향으로 굳어지기 십상이다. 원래는 추상화라는 것은 어떠한 제한도 없으며 자기 맘대로 꼴리는 대로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감상자가 어떻게 느꼈다고 하면 그것을 틀렸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50년대에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이성자의 그림을 보고 ‘동양의 시가 들어온 현대의 작품’이라고 했다. 만약에 작가가 한국에서 온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렇게 평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만큼 작품에서 원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정보로 인한 선입견이나 착시현상처럼 생성되는 것이다.


이성자 _ 투레트의 밤 - 8월 2 - 79 _ 1979 _ 캔버스에 아크릴릭 _ 150x150cm _ 개인소장

작품은 결국 작가와 함께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학 분야에서 노우드 러셀 핸슨이 말한 ‘관찰의 이론 의존성’과도 연결된다. 작품을 보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정보나 만들어진 선입견)이 먼저 주어지고 우리의 관찰과 반응은 그것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물리적 시각적으로 똑같은 두 개의 작품이 만약에 전혀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가에게서 나왔다고 가정하면, 그 작품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 작품일수록 구체적이지 않고 애매할수록, 작품은 보통 작가 정보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법칙이 아니다. 보통 그렇게들 한다는 말이고, 작가와 작품을 꼭 연결시켜야만 한다는 법칙 같은 것은 없다. 감독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무 정보 상태에서 영화 자체만을 보고 선택하는 사람도 있듯이, 작품도 작가와 연결시키지 않고 작품 자체로서 감상해도 된다. 그렇게 해서 자기 방식으로 감상하고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는 척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결국 미술은 사회와의 소통이고 어떤 약속된 기호처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고, 그저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감상하는 것은 거의 힘들어진다.


항상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고, 결국 작품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작가의 이름값과 작가 정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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