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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위대한 진짜 이유

by 김경섭

피카소는 왜 위대한가?


육상의 우사인 볼트, 농구의 마이클 조던, 축구의 메시가 각 종목에서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취향이나 의견이 개입될 여지보다 객관적 데이터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은 전혀 다른 분야이다.


미술에서 시대와 지역을 통합해 가장 위대한 단 한 명의 예술가를 대라고 하면 아마도 피카소일 것이다. “미술은 몰라도 피카소는 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는 문제이기도 하다.



재수하면서 미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 미술학원에서 수채화 시간에 그림을 봐주시는 선생님께 그런 질문을 했었다. “피카소의 작품은 왜 명작이고 그토록 극찬을 하는 건가요? 미술을 공부하면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나요?” 선생님은 내가 너무 애송이라 설명을 해도 이해를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도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인지, 그냥 잔잔하게 웃으면서 얼버무리듯 넘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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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피카소의 작품을 왜 대단하다고 하는 거야?”의 의문은 지금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대놓고 쉽게 말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만 모두가 생각을 그대로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임금님이 벌거벗은 것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보다, 임금님 옷이 너무 멋있다고 동감하는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동화에서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로 임금님 옷이 보인다고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 눈에는 임금님 옷이 안 보이고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움을 솔직히 표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해 봐야 통할 것 같지 않은 까마득한 벽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피카소가 왜 위대한 지 제대로 된 번지수에서 질문을 한다면, 답변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똑같이 잘 그리는 것에 집착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표현 방식을 개척해 냈기 때문이다. 미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큐비즘’(입체주의: 여러 시점에서 본 형태를 조합한 그림)을 창시한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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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할 만한 사실은 그가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통적인 그림 기술은 이미 초년 시절에 거의 완벽하게 마스터해버렸다. 피카소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들을 보면 누구보다도 더 뛰어나며 기술적 완성도는 이미 그때 방점을 찍었다.


10대.jpg 피카소가 유년 시절 그린 그림


15살.jpg 피카소가 유년 시절 그린 그림



피카소 스스로도 그때 당시에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화풍을 펼치기 전에, 기존의 관례적인 방식대로 그릴 것인지 새로운 방식에 도전할 것인지 커다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에 큰 위험이 따르는 것이어서 굉장한 결단력과 모험심을 필요로 했다. 그 누구도 하기 힘든 용기 있는 도전을 했고 결국 성공했다.

피카소가 기술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기존의 관습대로 놀라운 묘사력을 보여주는 그림에 머물렀다면, 결코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윌리암아돌프부그로(1825-1905) (1).jpg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1825-1905) 지금 현재는 피카소보다 훨씬 밑인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가



윌리암아돌프부그로(1825-1905) (3).jpg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1825-1905) 지금 현재는 피카소보다 훨씬 밑인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가


예전에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는 다시 나올 수 있지만, 피카소 같은 천재는 다시 나올 수 없다. 큐비즘은 피카소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쯤 되면 마치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같은 절대 진리처럼 주입식 명제가 되고, 이미 충분히 이해가 간 상태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찝찝한 사람들조차도 “나는 안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더 이상 말할 자신과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안전하고 외로워지지 않는 방법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세에 묻어가는 것이다. 그냥 우기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충분한 근거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피카소가 가장 위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섞여 있는데 무조건적 사실로만 구성된 것 마냥 강요하는 것이 나는 좀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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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피카소만큼 혹은 더 뛰어난 사람들이 다 피카소만큼 성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생각이 그 정도로 위대한 것인지도 난 잘 모르겠고, 더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기발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정도로 잘 되지는 않는다.


피카소가 정통적인 그림 기술이 이미 뛰어났고 매우 용기 있는 선택을 해서 성공을 일궈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겠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위대한 작가인지 충분히 알겠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명제인 것처럼 주입하고 강요하는 그 위압적 분위기가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인식의 대상이자 기념비적인 분기점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런데 감상의 대상으로까지 억지로 등극시켜서 그것을 강요하고, 대세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척하거나 좋아하려고 애쓰는 분위기에 나는 거부감이 생긴다.


피카소에게서 가스라이팅


정교하고 완성도적으로 훌륭한 웰메이드 영화들을 많이 보다 보면, 사람의 용량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좀 질릴 때가 있어서 갑자기 정말 B급 감성의 어처구니없는 병맛 영화가 땡길 수도 있다. 마침 그런 영화가 있는데, 감독이 멍청하고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기본기는 한참 전에 충분히 증명한 천재 감독인데, 과감한 실험 정신으로 누구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파격적인 아방가르드 방식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었단다. 근데 봐보니 이 병맛 영화가 묘한 매력과 유머가 있다. 그 영화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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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거기까지면 되지 않나? 한 번 히트 쳤다고 비슷비슷한 그런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면 이미 수도 없이 보여준 비슷비슷한 또라이 짓인데 처음에나 참신했지, 계속해서 보여주면 지겨워지지 않는가?


한 번은 웃기지만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똑같은 유머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봐야 한다면 그것 또한 곤욕 아닌가? 나에게는 피카소의 작품이 그렇게 느껴진다.


피카소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허영심과 두려움을 꿰뚫어 봤고, 그것들을 이용해 판을 깊숙이 읽고 주도권을 송두리째 가져갔다는 점에서 게임의 진정한 최후 승자인 것은 맞다. 아무 생각 없이 막 휘갈겨 그린 자기 작품들을 경외감과 탐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관람하고 그 안에서 인생의 비밀이라도 발견한 듯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는 사람들을 그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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