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이 대가인 이유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미술 작가 중 가장 유명하고 작품 값이 비싼 작가는 단연 ‘이우환’이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는 이미 한참 전에 작고했으니 생존하는 작가 중에서 말이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작품은 본 적이 있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점 하나 찍은 작품’의 주인공이다. 점 하나 찍은 작품이 십억이 넘는다. 어떤 사람은 “어떤 바보 멍청이가 속아 넘어가서 저런 작품을 그 돈을 주고 사느냐?”라고 하고, 현대미술은 말장난에 사기일 뿐이라고 분노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편에는 그의 팬임을 자처하고, 작가와 작품의 위대성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나는 왜 그를 그렇게 칭송하고 그의 작품이 대단하다고 하고 비싼 것인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나의 의견을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식한 것 같고 그냥 우기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엄청난 분량이 있는 것 같은데, 좀 어렵기도 하고 그닥 와닿지도 않고 해서 불만만 머금은 채 그냥 혼자서 투덜거리며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왔다.
그러다가 그 진짜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에 대해 공부를 했다. 여기저기 자료들을 뒤져서 읽고 또 읽고 인터뷰와 강의 동영상들을 찾아서 몇 번씩을 돌려 봤다. 도서관에서 그에 대한 책도 빌려서 읽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육백 번이 넘게 졸기는 했지만, 어쨌든 중간에 포기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끝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가 대가인 이유를 로봇처럼 줄줄줄 외우고 있는 그에 대한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서 나름 노력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린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과의 관계. 그것들이 부딪혀 일어나는 울림. ‘만남’의 관계에서 오는 현상학적인 지각의 세계. 점 하나가 텅 빈 공간과 맞물려 발생해 내는 고요한 에너지. 1mm만 비켜 찍어도 전혀 다른 그림이 되고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는데, 적확한 그 지점을 찾기 위한 숨 막히는 집중력. 어디에 어떻게 찍어서 그 긴장감과 생명력의 에너지를 유지할 것인가 끝나지 않는 작가의 고뇌…
산업사회의 상징물인 ‘철판’과 자연물의 상징인 ‘돌’의 만남과 대립 그리고 조화. 그것들에서 생성되는 분위기와 에너지…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깎고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은 기존의 방식이고 고정관념이다. 그는 그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개입 말고 최소한의 손길을 거쳐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제시하며 사물에 존재성을 부여하고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그것들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직접 제시한 것이다. 서로 어울리게 한다거나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재검토해본다든지 그런 식으로 물건을 차용해 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원래부터 있던 것들을 가지고 이런 사유의 깊이와 길이와 분량을 만들어내는 재주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니 부정하기는 힘든데, 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지가 않다. 그냥 내 취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저 허세라고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달걀이 함락할 수 없는 바위 성의 견고함이라는 게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그냥 시치미 뚝 떼고 우기는 정도가 아니다. 인정하려 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논리는 그의 작품가격만큼이나 가득 채워놨다.
일명 ‘점 하나 찍은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그게 쉬울 것 같은가?
“점 하나 찍는 것은 나도 하겠다.” 내지는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될 수 있다면 나도 충분히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작품 하나 완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작가가 무슨 고시나 전문직 시험을 거치고 자격증을 획득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 맞다. 그냥 적당히 전시 한번 치르고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공표한다면 특별히 반대할 사람 없다. 그냥 자신이 스스로를 작가로 규정하면 작가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거기까지 하는 것은 쉽지만, 이우환처럼 대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이우환이 대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최첨단 기능이 갖추어진 성능 좋은 자동차를 1억에 파는 사람과 아무런 기능도 없고 싸구려 부품들로 만들어진 단순한 손수레를 1억에 파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더 어려운 일일까?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인 것일까?
당연히 손수레를 파는 사람이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손수레를 1억에 파는 것을 보고, 그런 일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비슷한 손수레를 만들어서 팔아본다고 치자. 참 쉬운 일이다. 그렇게 해서 파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손수레를 만들어다가 가격표를 붙이고 판매하겠다고 하는 일까지는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판매를 성사시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지점이 바로 그가 대단한 이유이다.
“어떤 말기술과 신기를 발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수레를 1억에 팔았다면 사기가 아닌가?” 하고 말을 할 수도 있다. 만약에 어떤 어리숙하고 돈만 많은 사람이 화려한 말솜씨에 속아 넘어가서 1억을 주고 손수레를 샀는데, 그것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돼팔 수가 없다면 그는 사기를 당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 한 사람만 그것을 산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돈이 아주 많은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나중에 더 높은 가격에 내다 팔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간단하게 ‘사기’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비율적으로는 소수이지만 자본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기득권자들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첨단 무기들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작은 칼 하나 들고 살아남는 것으로도 예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의 무장만 하고 전쟁터로 뛰어드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거의 다 곧바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총과 탱크들을 제압하는 신공을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 보니 한참 전투가 치열할 때는 방호소에 숨어 있었는지, 아니면 말을 너무나 잘해서 적들과 친구가 되고 자기만 좀 살려주도록 잘 부탁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깊은 내막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총합이 결국은 실력인 것이고, 그는 살아남았다. 1~2년짜리 단기전이 아니다. 평생에 걸치는 수십 년의 장기전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다.
정말 저 사람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사기를 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는, 그 사람이 그 일을 해온 시간을 보면 좀 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아주 긴 시간에 걸쳐서 변하지 않고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견지해 왔다면, 아무래도 진정성일 확률이 높다.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돼 있다. 그것은 그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가 된다.
평생의 긴 시간을 어려워도 불굴의 정신으로 버텼는지, 아니면 교수직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뜨신 밥을 먹으며 그 힘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는지는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교수들 정도가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다. 그들의 작업이 더 뛰어나거나 그들이 더 끈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상황 상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고 그 외의 작가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 상 불가능해져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더욱 인정받는 대가들을 살펴보면 90% 이상이 교수 출신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살아남았고, 대가가 되었다.
교수였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할 수 있었고, 그가 대기업 총수와 학연 지연으로 연결돼 있는 끈끈한 관계이고 삼성의 전폭적인 지원과 입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냐고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운도 그의 것이고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실력이든 주변의 도움이든 그가 가진 능력의 일부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아무나 픽하지는 않는다. 세상 어떤 큰 성공이 주변의 도움과 천운 없이 그저 순수하게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있는가?
페기 구겐하임과 레오 카스텔리가 없었다면 잭슨 폴록이 있었겠는가? 찰스 사치가 없었다면 데미안 허스트가 있었겠는가?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이 없었다면 무라카미 다카시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 누가 혼자의 힘만으로 큰 성공을 이룬 경우가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의 작품을 그래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취향은 내 자유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의 진품(이라고 규정되어진 것)을 갖게 된다면, 나는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아낄 것이다. 그게 얼마짜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