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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왜 위대한가?

by 김경섭



피카소뿐만 아니라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의 현대미술 거장들을 도대체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 피카소.jpg 피카소


2. 앤디 워홀.jpg 앤디 워홀


3. 잭슨폴록.jpg 잭슨 폴록


기존의 관념을 혁파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는 가장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이유 외에도 결정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위대해서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못 찾겠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과 똑같은 이치이다.


각자의 신공을 자랑하는 무림의 고수들이 일인자를 가린다고 상상을 해보자.

구척장신 관운장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적의 병사들 100명의 목을 단숨에 쳤다는 소문이 있고, 천마신군의 흑풍광무, 북해빙궁의 빙백신장, 신지의 초마검기 등드리 등등 극강의 무술들이 난무한다. 거기다 저 멀리 바다 건너서 도장을 깨겠다고 북두신권의 켄시로가 나타났다. 에네르기파로 달을 날려버린 전력이 있는 무천도사도 합류한다고 한다. 타이슨과 효도르도 합숙훈련에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한국의 싸움 짱인 최배달도 매일 팔굽혀펴기를 삼천 번씩 하며 지옥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맞붙는다면, 공정하게 무공의 강약을 겨뤄서 강한 순서대로 살아남을까? 물론 아주 압도적으로 막강하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협공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고 반칙이나 간교한 술수에 휘말려서 죽을 수도 있다. 교만하게 방심하고 건들거리다가 예상치 못한 일격에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만든 함정을 까먹고 있다가 실수로 자기가 걸려서 죽을 수도 있다. 갑자기 급성 불치병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 여색을 너무 좋아해서 복상사로 죽을 수도 있고, 불행하게도 대형 재난에 휩쓸려서 죽을 수도 있다. 어떻게 죽든지 간에 죽으면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무공과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갈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무공은 좀 약하지만 사회성이 좋고 남을 웃기는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든, 반칙을 쓰거나 함정을 파서 야비하게 살아남든, 단호하고 과감하게 마치 조조처럼 후환의 싹을 다 잘라버리고 경쟁자들을 독살시켜서 살아남든, 결투 중 대결 상대가 어젯밤 식중독으로 인한 설사 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니어서 발을 접질리는 바람에 운 좋게 승리해서 살아남든지 간에, 살아남은 자는 강호를 호령하며 승자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렇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대해서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개체가 진화한 것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와 똑같다. 결국은 생존에 적합한 개체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합리화 잘하고 사람들 설득시키는데 소질이 있어 “종교를 하나 창시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 ‘말言’ 선수들과 가스라이팅의 유단자들 섭외해서 합숙훈련하며 연구개발 하도록 지원해 주고 결정적으로 입금 두둑이 해주면, 어떠한 개소리나 사이비 종교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을 충분히 감동시키고 믿게 할 만한 논리는 매우 훌륭하게 만들어낼 수가 있다.


완전히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둔갑시키는 것도 아니고, 일정 정도의 팩트와 좀 더 극적으로 다듬어서 신화화시키기 적당한 스토리, 그리고 증거가 될 작품들이 있다면, 선수들이 모여서 조미료 좀 더 치고 더 아름답게 포장해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체보다 곱하기 X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자동으로 자가 번식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몸집을 부풀리게 되는 것처럼, 작품의 가격까지 탄력이 붙어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되면, 그 위상의 견고함은 일부 몇 명의 반대 의견 정도로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명실상부 천하무적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위대한 작가라는 것이 완전히 허구라는 것까지는 아니다. 과장되고 미화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아 왕관을 쓰고 위대해진 작가 한 명과 실패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사라져 간 무명작가 수만 명 사이에는, 결과론적으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의 시점으로 뒷걸음질해 돌아가 보자면, 실제의 실력이나 예술성 면에서는 깻잎 한 장 차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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