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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Nov 02. 2023

서울대 나온 대리기사가 말하는  서울대 나와서 좋은 점

<특별기획> 서울대 팔아서 살아남기 프로젝트 2

학벌이라는 것의 명과 암, 그것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는 수준 있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냥 내 경험과 내 생각을 한 회 분량으로 이야기하겠다.


여기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서울대를 나와서 좋은 점은, 가장 단적으로 이 의 제목과 조회수 등에 있지 않을까? 기존에 올리던 콘텐츠들과 비교해서 퀄리티 면에서는 별로 좋을 것도 없는데, 반응이 다르다면 그것은 아마도 분명히 ‘서울대’ 간판 장사의 힘일 것이다.


예전에 <여고괴담> 영화에서 학벌주의에 찌든 교육 현장에서, 일등만 하는 모범생이

“떡볶이 장사를 해도 서울대를 나와서 하면 성공한다.”는 대사를 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내가 대리운전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글에 이런 제목을 붙일 수 있는 것도 그곳을 나왔기 때문이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따로 이렇게 어그로를 끌 수가 있을까?


학벌을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에 대한 환상과 우대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흔히 있는 일이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예외의 경우도 충분히 있고, 과거에 비해 학벌의 위력이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대를 나와서 대리기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서울대를 나와서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하다.

와 세상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고 이런 사람을 보면 학벌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 예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글을 쓸 수도 없고 이런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 수도 없다는 점에서 학벌의 위력을 또한 증명하고 있다. 참 모순적이고, 세상에는 더 모순적인 수많은 예와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


같은 학교를 나온 내 주변만 봐도 경우와 생각들은 참 다양하다.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이 자기는 학교 덕 본 거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거칠고 힘들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으면서도 학벌 프리미엄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학벌을 이용해 더욱 잘 나가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하나도 이용을 못하거나 그것이 정말로 쓸모가 없음을 증명하는 선배와 동료들도 충분히 많이 있다.


모든 경우의 수는 다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대체로 더 앞날이 깜깜하다는 미대의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른 상황과 입장과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1을 받고도 인정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100을 받고도 인정하지 않고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듯이, 학벌의 수혜에 대해서 해석하고 평가함에 있어서도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결국은 주관적인 부분이 크고, 내 이야기도 결국은 내 주관적인 시선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가?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다 주관적인 것이지.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커다란 힘이고, 실체와 시뮬라크르(그저 이미지) 사이에 걸쳐져 있다. 그 커다란 힘에서 벗어나는 예외들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예외들이 더 멋있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또한, 많은 것을 받고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음에도 불만족스러워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또 다른 콤플렉스를 찾는 사람보다는, 학벌 등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해 내는 진정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훨씬 더 멋있고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나 더


서울대를 나와서 좋은 점 또 한 가지는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한데,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다. 콤플렉스 하나를 줄이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저것 콤플렉스가 굉장히 많은 (자존심만 쎄고 자존감은 낮은ㅠㅠ)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충분히 가치가 있고 매우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또 분명하게 생각하는 매우 모순적인 인간이다.


여하튼 내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학벌 콤플렉스 또한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남들보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 핑계를 대고 불평을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학벌 핑계는 댈 수 없으니, 나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해야 하는데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다. 그것이 더 잔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진짜 원인을 인정하기 싫어서 가짜 원인을 찾으며 자위하기는 더 싫다.

 

하지만 아직 나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기에도 이른 것 같다. 각자가 꽃피는 시간들은 모두 다르고,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골은 후반전 끄트머리나 연장시간에도 터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대리기사가 어때서? 서울대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왜 그렇게 자괴감에 헤매느냐?” 하는 반응도 들어야 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것인데 그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방향으로 해석이 되고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말과 마음이 백 퍼센트 합치될 수는 없는 이중성 때문인지, 내 깊은 속마음을 들킨 것도 같고 내 안의 모순을 또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평생 나를 위축시킬 수도 있는 콤플렉스 하나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학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점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서울대라고 해도 다 똑똑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보들도 많기 때문이다. 지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에 맹종하고 편견과 독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 말이다. 와 이런 바보들도 이 학교에 오는구나... (물론 그들은 날 보며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하고 생각하며, 학벌 환상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참 전 고3 때 다녔논술 학원의 선생님이 서울대 인문대학을 나오신 분이었다. 쉬는 시간에 잠깐 사담을 하다가, 그분이 한 해 서울대 입학 정원을 한 삼천명인가 정도로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 내가 알기로는 사천 명이 넘고 그때 당시에 한 오천명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니까 그분이 피식 웃으시면서, 자기들은 농대와 예체능은 같은 학교로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한순간에 다 사라졌던 신기한 경험이 있다.

 

요즘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만 봐도 학벌에 대한 환상이 많이 사라지지 않나?...


한 가지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강남의 한 고급스런 예식장 앞에서 젊은 고객 두 분을 태운 적이 있다. 그날 결혼식의 하객 친구들이었다. 싱싱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제 막 결혼을 할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그날 하객 친구들에 대한 뒷담화와 결혼 시장에서의 서로의 이야기들을 막 하고 있었는데, 그 두 고객이 다 서울대를 나온 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전문직이나 상류층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고, 어떤 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걔 학교 어디 나왔지?” “어 걔 연대 나왔어. 아이 공부 못 했어~”

이러는 것이었다.


더 재밌는 것은 그 두 사람 다 매우 젠틀하고 매너가 좋고 대리기사를 굉장히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가 있고, 보는 시각에 따라 오해가 많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그들에 대한 해명을 좀 하자면, 그들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우월감에 가득 찬 사람들 이라기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우리들만의 소속감' 비슷한 것인데, 그들도 그들끼리 있을 때만 하고 그들끼리는 충분히 받아줄 수 있는 농담 비슷한 것이다.


밖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욕먹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 당연히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비교질 지옥과 상대적 박탈감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밖에서 보면 많이 가지고 있고 높은 등급에 있는 것 같은 그들조차도, 그들 안으로 들어가면 또 그 안에서 수준과 위계를 나누고 그 안에서 멘붕 당하고, 남들보다 쪼금 더 좋은 거 가지고 있는 걸로 자위하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 정도는 나는 귀여웠다. 그것을 농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내가 학벌 콤플렉스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서울대 안에도 모두 뛰어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은 평범하거나 부족한데 눈살 찌푸려지는 우월감과 특권의식으로 (아까의 그 농담성과는 다른 진성의) 가득 찬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물론 예의 바르고 생각도 반듯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범접할 수가 없는 뛰어난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의 수는 다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이다. 명문대에 지적으로 조금 더 우수한 사람이 많을 확률이 더 높을 뿐이다.


작가의 모순


이 글의 제목부터가 참 가관이다. 더 나아가 이 브런치 스토리의 간판이고 내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친놈 예술가 사기꾼」도 나는 개인적으로 참 저질적인 제목에 속한다고 인정한다. (저질적이면서도 묘하게 뿌듯한,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런 또 이중성이...)



하지만 제목과 내용의 퀄리티가 결과와 상응하지 않고, 싼마이 일수록 더욱 성공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나 현 플랫폼 시장의 절대강자 유튜브는 일단 시선을 끌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나 또한 살아남기 위해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결국 이렇게 제목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글을 써서 올리고 있다. 이 글의 제목과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고 상업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퀄리티가 높은 콘텐츠는 지루해서 멀리하고 자극적인 제목에 손이 가서 결국 그런 것을 소비하고 있는 그 또한 그 손가락질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게 세상은 모순의 집합체이고, 내 이야기들도 따지고 보면 앞 뒤가 안 맞고 이율배반 범벅이어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표현을 한다는 것이 참 조심스러워질 때가 많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아가 강하고 그러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과하게 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부끄럽다는 것은 숨고 싶다는 것인데, 근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참을 수가 없는 것인지, 말을 하고 싶고 결국 표현을 한다. 이 모순을 아직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작가의 일은 표현을 하는 것이고, 이 일을 선택했다면 그러한 부끄러움과 괴로움과 비웃음과 조롱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딜레마 일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편에서는 <특별기획. 서울대 팔아서 살아남기 프로젝트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작가와 부업으로써의 대리기사 일에 대하여’를 만들어서 올릴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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