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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Nov 09. 2023

서울대 나온 대리기사의 이야기

"진상 고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상 기사도 있다!"

원래 3부작으로 기획했던 <특별기획. 서울대 팔아서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탄력 받아, 4부작으로 늘이기로 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욕심으로 공갈빵 끼워 넣으면 소탐대실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써 놓고 보니, 새롭게 추가된 이번 3회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진상 고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상 기사도 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안 되었을 때였다. 대중교통이 끊기는 시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한 콜이라도 더 타려고 욕심을 부렸다. 그러다가 막차를 찾아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그날 수입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차를 타 보려고 온 집중력을 다해서 눈을 부릅뜨고 교통 앱을 검색했다.


집 근처로 갈 수 있는 버스들의 막차시간을 하나하나 검색했고, 잠실역에서 1시에 막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내가 있는 곳은 하남이었다. 일단 잠실로 가는 버스가 그 시간에 없을뿐더러, 거기서 여유 부리고 있으면 잠실에서 집 근처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칠 상황. 일단 택시를 잡아 잠실로 향했다. 마지막 차편을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만약에 잠실역 부근의 버스 승차장들의 위치를 내가 파악하고 있고 내가 타야 하는 차를 타려면 어디에서 내려서 가장 경제적인 시간에 갈 수 있는지 알고 있다면 막차에 탑승하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엉뚱한 데 내려서 두리번거리며 어벙벙 헤매는 자는 가차없이 버림받는 상황이었다.


판돈이 크게 걸렸던 것도 아니고, 고작 4~5만 원이 걸린 게임이었을 뿐인데 그날 일 한 시간의 절반을 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손도 약간 떨리고 식은 땀이 흘렀다. 택시를 타고 가며 짧은 시간 동안, 버스 승차장과 가까운 위치를 검색해서 기사님께 부탁했다. 기사님도 함께 긴장해서 속도를 바짝 높이긴 했는데, 젠장 막판에 신호대기에 걸렸다. 그리고 더 불안한 기사님의 한 마디. “근데 이쪽이 구리, 남양주 가는 방향이 맞나?...”


기사님이 착각한 것임을 간절히 희망하며, 나는 한자리 수의 확률을 살리려 내리자마자 허둥지둥 버스승차장을 찾았다. 승차장이 있기는 있는데, 역시 막차인 듯한 다른 버스들만 몇 대 지나가고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가벼?...” 하는 직감이 들었다.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땡! 하고 문 닫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듯했지만, 1%와 0%의 차이는 나에게는 천지차이다. 작가가 하는 일이 1% 이하의 가능성을 보고 온 힘을 끌어 모으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0%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그렇게 1%와 0%의 차이는 우주만큼의 차이가 있다. 여기가 엉뚱한 곳이 확실한 것인지 짧은 시간 또 온 집중력을 다해 살폈다.


아뿔싸! 여기는 6번 출구인데 내가 가야 할 곳은 7번 출구였던 것이다. 종점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찾았어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곳으로 달렸던 것이다.

치킨집 셔터 내리고 있는데 최선을 다 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땀 뻘뻘 흘리고 헉헉 거리면서 짜장면 한 그릇만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희망이 남아 있을 때나 절망스러운 마음이 있지, 아예 없는 것을 확인하면 오히려 무덤덤해지는 법.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파악한 순간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할 수 없는 것이지 뭐...


그런데 잠깐만... 만약에 집 근처로 가는 콜을 잡을 수만 있다면 또 인생지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기는 비교적 콜이 있는 번화가 쪽이 아닌가?...

그냥 택시를 잡기는 또 억울해서, 집 근처로 가거나 집 방향의 반이라도 가서 택시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콜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잠실역의 콜 경쟁은 너무 치열했다. 도착지를 확인할 만한 여유를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집 근처인지 집 방향인지 확인하려 하면 이미 빛의 속도로 콜은 사라져 버린다. (다른 기사가 잡는다.) 콜 캐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일단 누르고 봐야 하는데, 그러다가 반대 방향으로 걸리면, 울면서 운전하며 아예 오늘 수입 전부를 날려야 할 수도 있다.


삼십 분 좀 넘게 콜을 기다리며 생각하다가 첫 차 시간을 검색해 봤다. 첫 차는 다섯 시가 넘어야...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쯤이야 그날 수입이 아까워서 개겨 보겠지만, 택시비 아끼겠다고 네 시간을 그러고 있는 짓은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았다. 택시비를 다시 검색해 보니, 대략 4~5만 원.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에겐 이런 고민이 너무 쪼잔스러운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날 하루 업무 절반의 의미가 그냥 또 날라가는 일이었다.


결국 택시를 잡았다. 대리기사라고 하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아니 거기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돈은 어떻게 버냐고 했다. 초보라 막차 시간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택시기사 아저씨가 대리기사 일이 힘들 것이라며, 자신은 택시기사 15년 차인데 대리기사 일은 딱 하루 하고, 시작한 첫날에 그만둔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시작한 첫날에 고주망태가 된 손님, 일명 ‘개진상’을 만났던 것이다. 고객의 폭력과 조롱을 도저히 견디다 못해 한강대교 중간에서 그냥 차를 세우고, “아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닌가 보다...” 하고, 대리운전을 시작한 첫날에 일을 그만두고 택시기사로 전업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택시 또한 역시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하기에 일을 많이 할수록 언젠가 진상 고객을 또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의 매뉴얼과 노하우 등을 몇 개 알려 주었다. 그것들은 그날 택시비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언젠가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터지게 돼 있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을 만나 싸움을 하고 서로 할퀴고 할큄 당하는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도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놓고서, 일이 일어났을 때 촌스럽게 당황하고 쫄은 표정 짓는 것보다는, 수도 없이 겪어 본 백전노장인양 여유 있는 척 대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일을 한 시간이 길지 않고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악명 높은 정도의 강적은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기억에 남을 만큼 불쾌했던 정도가, 비 오는 날 벤츠 와이퍼의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자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 은근히 무시하던 고객, 앞뒤로 너무 차들이 붙어있는 간격에서 차마다 페달 유격이 달라서 차가 튀기며 부딪힐까 봐 조심하며 쩔쩔매는데 그것도 못한다며 어이없어하고 면박을 주던 고객(지도 남의 차 운전해 봐라, 처음부터 살살 움직이는 게 쉽나...), 그리고 뒤에서 “차선 내려! 차선 내려!” 하고 소리 지르던 (내비게이션도 좌회전을 알려주고 2차선에서 1차선으로 내리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3차선으로 바꿔서 직진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차선 올려라, 내려라” 표현은 그날 처음 들어봤다.) 고객 정도.


여하튼 진상이라 할 만큼의 강적은 아직까지 없었고, 비교적 다들 멀쩡한 정신에 작은 실수 정도는 그러려니 해주는 젠틀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진상이라고 고객만 있는 것은 아닌 법. 기사 중에도 분명 진상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진상 트로피는 바로 ‘나’의 몫이었다.


한 달 하고 완전히 감을 잡고 노련미를 획득하기는 이르다. 대중교통이 끊길 시간이 되면 역시 좀 몸을 사리면서 소극적이 되는데, 그렇게 방어적으로 소극적으로만 하면 목표 수입에 이르기가 힘들어진다. 때로는 모험도 하고 과감하게 지르기도 해야, 멀리 갔다가 운 좋게 복귀콜을 잡기도 하고 하면서 막차를 간신히 잡았을 때보다도 더 럭키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마지막 잡은 콜의 수익이 택시비보다 높다면 그 콜은 잡는 게 맞다.


그날은 차가 조금 있으면 끊길 듯한 애매한 시간에 작업실 근처까지 와서, 그냥 퇴근하려고 하는데, 콜이 하나 또 떴다.

‘아... 잡아 말어?...’

운 좋으면 막차 타고 돌아오거나, 더 운 좋으면 거기서 복귀콜을 또 잡거나, 운 없으면 택시비가 더 나오거나 중의 하나였다.

‘에라 모르겠다!...’ 누른다고 다 잡히는 것도 아니고(빨리 눌러야 하는 경쟁이 있기에) 그냥 눌러나 보자 하고 눌렀는데, 덜컥! 잡혔다. 왠지 모를 후회도 좀 밀려오고, 취소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취소가 반복되면 콜 배정 페널티가 생기기도 하고 이것도 일종의 약속인데 절대 안 되는 강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가는 게 맞다.


근데 고객의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계속 괜히 잡았다고 후회가 되고 막연한 불안감이 불어나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의정부로 그렇게 많이 먼 곳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의 막차 정보가 없었다.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미 끊기는지를 알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든지를 안다면 아예 마음을 비우고, 복귀콜을 시도해 보든지 손해를 미리 받아들이든지 할 텐데, 막차를 탈 수 있을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았다. 안갯속에 있을 때는 더욱 초조하고 긴장감이 늘어난다.


‘거의 다 와 간다...’ 빨리 주차해 주고 교통 앱을 검색해서 막차에 올라타야지. 마음이 급했다. 신호가 나를 도와주길 바랐는데, 급한 사람일수록 신호는 더욱 야박하다. 그냥 지나갈까 말까 하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약간 급정거를 했다. 덜컥 몸이 앞으로 좀 쏠렸다. 고객은 멀쩡한 정신으로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약간 불편한 듯했다.

“음... 허험...”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아 빨리 가야 하는데 빨리 가야 하는데, 그 생각에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또 한 번 급정차를 이번에는 횡단보도가 지나서 했다. 으악 이건 좀 큰 실수다. 고객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 아 진짜 왜 그러세요?!!!...”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그냥 저 앞 주유소에서 차 세워주세요!”

“ 아,,, 진짜,,, 정말로!,,, 죄송합니다!...”


화가 난 고객이, 대리비를 신경질적으로 꺼내서 세고 있는데

이 정도면 돈을 안 받는 게 맞을 정도로 미안했다. 과거의 나 같으면 이 정도의 큰 실수면 미안함도 있고 내 자존심도 있고 해서 피해를 끼친 대신 돈을 거절했을 것이다.


너무 미안해서 돈을 거절할까 잠깐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돈은 덥석 받았다. 그리고 연신 사과를 반복했다.


참다 참다 못해 그냥 차에서 내리고 만 대리기사도 있지만, 참다 참다 못해 차를 그냥 돌려달라고 한 고객도 있다. 이 정도면 ‘개진상 대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고객의 집까지 몇 백 미터밖에 안 남긴 했지만, 만약에 그날에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그것은 온전히 내 책임이 맞다.


그날의 치욕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단 한 번 있었던 큰 실수인데, 다시는 반복하면 안 되는 실수이다.




다음 편은 이번 특별기획 4부작의 마지막 회입니다. '작가와 부업으로써의 대리운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수입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에 관해 제 경험에 한해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번 4부작 특별기획은, 시선을 끌고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급조된 프로젝트임을 고백합니다. 아이디어제시하고 영감을 주신 승태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 4화를 끝내고 나면 원래부터 제가 하던 이야기, 긴 시간 동안 다듬고 다듬어 온 제가 그토록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를 귀신처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전체의 내용 중 1/3(총 3권 중 1권)은 이미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너무나 소중해진 이곳 브런치스토리를 통해서도, 완재될 때까지 꾸준히 글을 게재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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