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섭 May 22. 2024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

본질은 항상 숨어 있다


항상 그렇지만 이익의 크기가 크고 첨예한 사업일수록 진짜 이유는 감춰지고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마담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우아하고 고급지다. 어마어마한 권위와 자본의 힘을 어깨에 올려놓고 있어서, 그것을 접하는 사람은 미리 기가 죽어서 심리적으로 납작 엎드리게  되기 마련이다.


작품성, 예술성을 가지고 최대한 어렵게 잔뜩 폼 줘서 이야기하면, 뭔가 내가 속고 있는 것 같은 직감이 든다고 해도 제대로 반박할 수 없거나 반대할 힘이 없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반박할 수 있거나 반대할 힘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없다.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


소쉬르가 말하기 시작해서 보드리야르가 업그레이드시키고 정립한 개념인 기호, 기표, 기의, 시니피앙, 시니피에,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어렵고 왠지 뭔가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단어들은, 결국 쉽게 이야기하면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 ≒ 시뮬라크르 ≒ 껍데기 ≒ 가짜 이미지 ≒ 가짜 이유

기표 = 시니피앙 ≒ 이름, 명칭

기의 = 시니피에 ≒ 본질, 실체 ≒ 진짜 이유

시뮬라시옹 → 시뮬라크르의 동사형


진짜 이유는 감추어져 있고 바지 이유가 진짜인 양 행세를 하고 있는 경우는 세상에 굉장히 많다. 보통, 진짜 이유는 좀 부끄럽고 추악하거나 자존심이 상해서 인정하기 싫거나 들키기 싫고 노출되면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가짜 이유는 더 근사하고 그럴듯해 보이고 더 매혹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짜 이유를 보통 ‘명분’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연예인들의 이혼이나 이별 사유, 남자가 여자를 잠자리로 유혹할 때 쓰는 말, 현대 사회의 모든 광고들…


가짜 이유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굳이 들추어내서 좋을 것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적당히 막아주기도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덧칠해 주고 팩트 폭력의 고통과 괴로움을 줄여주기도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알고도 속는 척할 때도 있고, 환상적으로 즐겁게 속아줄 수 있도록 좀 더 그럴듯하고 멋있는 가짜 이유를 요구하기도 한다. 매력적인 가짜 이유를 잘 만들어내고 당당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재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자 센스이다. 바람둥이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가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두 경우가 분별하기 쉽게 딱 구분돼 있는 것이 아니고 그라데이션으로다가 절묘하고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중간 어디쯤에서는, 이것이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니면 너무 뻔뻔스럽고 위선적인 것인지 애매할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의 똑같은 행동을 보고 관점에 따라 각각의 사람들이 완전히 다르게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미술에서 느끼는 감동이라는 것도, 결국은 가짜 이유의 예술적 승화인 경우가 많다.

“이름값이 높은 작가니까.”, “이미 위대한 작가로 결론이 나 있으니까.”, “인정을 안 하기엔 너무 큰 권위를 가지고 있고, 작품 값이 압도적으로 비싸니까.”, “잘난 척하고 싶으니까.” 등의 진짜 이유는 불투명 페인트칠을 하고,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가짜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것들이야 말로 진정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다.


문학적 감성을 총 동원하기도 하고, 난해한 철학적 이유를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몽환적인 말로 그저 분량을 채우기만 할 때도 있다. 말하는 사람도 그것이 바지 이유인 것을 인지한 채로 말하기도 하지만(거짓말), 때로는 말하는 사람조차도 스스로에게 완전히 속아서 그것이 진짜 이유라고 생각하면서 말하기도 한다(허언증).


여기까지 오면 그것이 진짜 이유인지 가짜 이유인지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불가능한 지점에 이른다.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것들은 붙어서 경계선이 흐려지고 무지개처럼 한 몸이 되기도 한다.


표현의 진짜 이유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원수가 되어버린 두 명의 인물은 서로에게 ‘진짜 이유’를 묻는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



둘러대는 명분(가짜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상대에게서 듣고 싶은 것인데, 상대의 똑같은 질문에 대해 자신이 대답할 때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뭔가 답답하고 몽롱한 이유를 답변할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때로는 그것을 짐작한 채 상대방의 실토를 듣고 싶어 하지만, 그 자신이 대답해야 할 때는 진짜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감상자와 컬렉터 입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하는 데 있어서도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예술가가 표현을 하고 작품을 생산해 냄에 있어서도 진짜 이유와 가짜 이유들이 따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진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 안다.

물론 가짜 이유를 믿고, 믿고 싶어 하고, 진짜 이유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진짜 이유는 그것을 말로 꺼내 표현하고 나면 대부분 속물적이거나 천박하고 저속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재물욕, 성욕, 과시욕 등.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게 무엇을 위한 솔직함인지, 솔직함을 위한 솔직함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사실은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을 구태여 꺼내서 확인하는 것이 뭐가 좋을 것이 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감추려 하는 진짜 이유는 결국 ‘리비도’ 아니겠나? 그 지점에서 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꽤 동의한다.


‘리비도’라는 것은 프로이트 단계에서 좁게 해석해서 ‘성욕’에 국한해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아들러와 융의 단계에서 확장시켜 해석하면 모든 욕망들을 포함해서 ‘욕망’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리비도’의 원천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이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목적도 뱡향도 의식도 없는 그저 막무가내로 날뛰는 ‘욕망’을 가리킨다.


예술가가 작업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표현 욕망’을 꺼내는 일이다. 그런데 딱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욕이 표현 욕망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생존욕, 번식욕과 재물욕이 또한 그것으로 껍질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욕망’이라는 본질적이고 큰 카테고리 안에서 세부 욕망들이 딱 딱 구분되고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단어의 정의와 개념상으로는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욕망은 다른 욕망의 옷을 훔쳐 입고 나타나고, 어떤 욕망은 어떤 욕망과 붙어서 결국 한 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딱 하나만 콕 찝어서 정확하게 제시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연결되어 있고 결국 하나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돌고 돌아 ‘욕망’이라는 가장 진부하고 본질적인 단어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은 진짜 이유이지만 그것을 말로 꺼내기는, 꺼내더라도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게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조절하기는 참 어렵다. 그닥 아름답지 만은 않은 진실을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기에 아름답고 듣기에 좋은 가짜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보통 ‘명분’ 내지는 ‘가치관’ 그리고 말 그대로 ‘이유’ 등으로 포장이 된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말하고 듣기 좋게 만든 가짜 이유로 간주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 이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것을 믿게 만들고 때로는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표면 내부의 진짜 이유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고 성숙해져 가는 일이다. 하지만 진실과 마주하는 고통을 느껴야 할 때도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피곤한 팩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전 04화 뽕 중에 가장 쎈 것은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