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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Nov 12. 2020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올랜도 파이지스 <유러피언>

이번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살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500쪽 짜리도 읽기 버겁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무려... 800쪽이다. 구입한 지 3달넘었고, 다 읽기까지는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읽다가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다른 책 읽고 글을 썼다. 그래도 꾸준히 눈 딱 감고 벽돌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완독 하게 되었다. 묘한 쾌감이랄까.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기분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유러피언>이다. 유러피언은 19세기 유럽의 전반적인 역사를 담고 있다. 물론 유럽의 문화와 산업의 발전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 그 뒤에 숨겨진 식민지 정복, 노예무역 같은 암울한 역사는 언급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책은 특정 세 인물을 중심으로 19세기 유럽 소개한다. 이들과 얽힌 인간관계를 보면 우리가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유명한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유러피언> 전체를 이끌어가는 세 인물


루이 비아르도: 폴린의 남편.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폴린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현대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국제주의(유럽은 하나다)를 추구하는 교양인이었다. 국제주의를 격려하는 글을 쓰고, 일반 대중에게 유럽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문학, 음악, 미술 관련 가이드북을 여러 권 편찬한다. 자신의 아내인 폴린을 사랑하는 투르게네프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폴린 비아르도: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최고의 성악가. 시대를 읽는 능력이 탁월해 공연에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 유럽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곡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대스타 겸 문화 중개인이었다. 또한 신인 예술가를 발굴하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국제주의적 예술관을 신봉했고, 말년까지 제자들은 양성하고 문화적 교류에 힘을 쏟았다.


투르게네프: 러시아 출신 문학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루이, 폴린의 도움을 받는다. 폴린을 사랑했으나  차가운 태도에 좌절한다. 하지만 심리적 요인(피학적 사랑인 것 같다: 지배당하길 원하는 사랑 유형)으로 그녀를 떠나지 못한다. 비아르도 부부 곁을 맴돌며 문학 관련 활동을 한다. 투르게네프는 유럽에 러시아 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고, 러시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칭송받는다. 폴린과의 관계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에도 불구, 사후 그의 고향 땅 러시아에서 열린 장례식에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루이-폴린 비아르도 부부, 투르게네프



19세기 유럽은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저작권 개념, 여행에 부여하는 가치, 예술인을 대우하는 법적 조치, 예술 공연 레퍼토리 형성 등 '현대적'이라 할 만한 문화적 가치를 정립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배경에는 오직 하나, 철도.


철도


철도는 곧 유럽이었다. 철도는 유럽을 하나로 연결해주었다. 마차로는 며칠이 걸릴 여행이 철도 하나로 고작 몇 시간으로 단축되었다. 비단 여행만이 아니다.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누구나 기차표를 살 수 있는 여력만 있다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철도의 발전을 보며 '하나 된 유럽'을 꿈꿨다. 그들은 자신을 '유러피언'이라 지칭하며 '유럽적' 문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했다. 물론 이와 상반되는 주장도 있었다. 유럽적 가치관 때문에 민족적 정체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유럽의 주류 문화는 '국제주의'.

https://www.notechmagazine.com/2012/06/the-european-railways-network-1870-2000.html


철도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세상을 바꾸어서 하나의 언어를 말하고 하나의 신을 숭배하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p.98
철도의 빠른 스피드는 하나의 혁명으로 인식되었다. (...) 우편 마차로 유럽 전역으로 나가는 데 몇 주가 걸렸던 편지는 이제 며칠이면 전달되었고, 철도를 따라 함께 달리는 전신을 이용하면, 뉴스는 몇 분 만에 주요 도시들로 타전될 수 있었다. (...)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철도는 유럽의 음악, 문학, 예술을 국제적으로 유통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철도는 문화 시장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p.100


철도가 일으킨 파급력은 엄청났다. 철도 덕분에 여행과 문화를 누리는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층도 휴가 기간에 다른 지역에 손쉽게 관광을  수 있게 되었다. 저렴한 티켓을 구매해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졌다. 철도 덕분에 19세기 유럽에는 출판, 공연시설, 숙박시설, 유흥시설과 같은 상업이 성행했다. 그 밖에도 대규모 공연, 빨라진 외국 문학 번역 속도 등 철도는 유럽 대륙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 인한 활발한 교류 덕분에 우리가 잘 아는 예술가 문학가(쇼팽, 리스트, 바그너, 마이어베어, 조르주 상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가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 바덴바덴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살롱




책을 읽던 도중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이랬다. 클래식 음악이 점점 비주류가 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클래식이라 하는 음악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최신 음악이었다. 그 시대를 살던 음악가들은 어떻게든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했다. 세상의 흐름을 빨리 읽고 수익성이 될 만한 음악을 제작했다. 반면 현재 클래식계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클래식 음악은 점점 비주류물러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구는 '네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본인도 <유러피언>을 꼭 읽어보겠다 했다.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건 이렇다.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급변하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철도는 어쩌면 당시 유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차 타다 떨어져 죽으면 어쩌지?''소음 때문에 귀가 먹으면 어쩌?'와 같은 걱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 철도를 이용한 유럽인들은 풍성한 문화를 누리며 살았다. 반면 그러지 못한 사람은 평생 고향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


지금도 마찬가지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새로운 트렌드에 합류한다면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될 것이다. 반면 전 방법을 고수하며 회피한다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참고도서>

http://m.yes24.com/Goods/Detail/9024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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