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혼신을 다해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재능 있다, 소질 있다, 하면 잘하겠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하지만 그런 칭찬은 내게 독이 되었다. 어설픈 재능만 믿고선 노력하기보다 요행을 바랐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설렁설렁 공부해도 중간은 갔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4년제 사립대라 90%는 공부를 안 하는 분위기였다. 그냥 인생 흘러가는 대로 사는 애들이 대다수였다. 거기서 우연히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쁜 공부습관은 굳어져갔다. 좁은 우물 안에서..
설렁설렁 공부했던 나는 미쳐버린 교만에 빠졌다. 내가 공부를 조금 잘 하는 줄 알았다. 특히 영어는 그게 좀 심했다. 주위에 영어와 아예 담을 쌓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영단어 조금 알고 원서도 조금씩 읽는 아주 기초적인 행위가 그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벽이었나 보다. 외국인과 말할 때 발음을 조금 굴려보니 그럴싸하게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기본 내공이 없는 상태다 허풍만 잔뜩 들던 나는 총체적 난국그 자체였다.
영어시험을 치면 결과가 잘 나올 줄 알았다. 아이엘츠 연습문제를 풀어봤다. 이런! 하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검은 건 글자요, 흰 건 종이였다. 공부 전략을 짤 필요성을 느꼈다. 매일 2시간은 리딩, 2시간은 리스닝, 2시간은 쓰기, 1시간은 말하기 이렇게 3개월 하면 중간 이상은 성적이 나올 줄 알고, 나름대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 분배였다. 기본 10시간 이상을 공부해야 했는데... 살면서 공부 같은걸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니 뭘 알았겠냐.
그렇게 설렁설렁 공부하다가 실제 아이엘츠 시험을 쳤다. 결과는 꽝! 대실패였다. 목표했던 점수의 반도 못 미치는 결과를 안게 되었다. 허탈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시험 당일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충전하고 갔던 터라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참 내가 봐도 배짱 한번 두둑하다. 그래도 아이엘츠를 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은 건 인생에서 잘 한 도전이라고 본다. 깨달았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피 터지게 해야 하는구나. 어설픈 전략 가지고는 절때 안 되겠구나. 공부의 기본은 인내심이구나.라는 걸 몸소 느꼈다.
그래도 아이엘츠 시험 준비하는 동안 미루고 미뤘던 빅보카 단어 레벨 80을 달성했다. 빅보카를 만든 S박사님의 멱분포를 보며 '우와! 내가 저 끝의 소수에 속하는구나!' 라며 나름 자부심을 느꼈다. 아이엘츠 도전기는 2020년 빅 이벤트 중 하나였다. 달콤 씁쓸한 추억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