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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Mar 31. 2021

들리지 않는데, 말하는 법을 배운다고 도움될까?

데이비드 오먼 <볼륨을 낮춰라>

TV를 보면 한쪽 귀퉁이에 수화가 나오는 것을 본다. 일반 시청자는 딱히 신경을 안 쓴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은 작은 화면으로 수화가 나오는 걸 불편해한다. 화면이 너무 작다 보니 TV를 뚫어져라 봐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시력도 나빠진다고 말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tvN>에 나오는 수화통역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몸이 제 기능을 하는 비장애인은 이런 불편함을 모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어떤 시청자는 수화가 나오는 게 거슬린다고 없애면 안 되냐는 불만을 표출한다고 한다. 수화통역사님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볼륨을 낮춰라> 책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바로 미국 빈야드 섬 칠마크 주민 이야기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주민들은 듣지 못하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칠마크에서 수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지역사회 중심에 청각장애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장애를 신경 쓰지 않고 청인과 청각장애인 모두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칠마크를 벗어난 외부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청각장애를 '고쳐야 할 병'으로 판단했고, 어떻게든 청각장애인을 듣고, 말하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일례로 '구화법'(입 모양 보고 말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 입장에선, 구화법은 별 효과가 없었다.


구화법의 목적은 청각 장애인을 수화하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들을 수 없는 사람보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자주 제기해 왔다. 그리고 이 주장은 '의사소통'이 아닌 '말'을 강조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을 청인에게서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곤 했다. p.210  


이 부분을 읽고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굳이 억지로 말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들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배울 수 있는데, 안 들리는데 억지로 입을 보고 말하기를 강요한다면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둘 다 힘들 것 같았다. 예전에 구화법으로 말하는 분을 본 적 있는데, 발음이 너무 불안정해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차라리 글로 써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짜 수화에는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법과 추상적 기호, 복잡한 기본 구조가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수화는 뉘앙스와 몸짓 개개의 변화폭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말보다 융통성이 있고 표현력도 좋다. p210


청각장애인 입장에서, 수화는 제1 언어다. 반면, 본인이 속한 나라 언어는 제2 언어다. 비장애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물론 나도 <볼륨을 낮춰라>를 읽지 않았더라면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화는 언어가 아니라 그냥 의사소통 수단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고 수화도 언어가 지녀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화는 제한해야 할 사항이나 '목발' 같은 것이 아니다. 수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 아니며, 분명히 '사회'에도 좋지 않다. p.211


치료를 하겠다고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를 버리고, 최신 보청기와 인공 귀를 끼도록 장려하는 건 옳은 일일까? 아무리 '나름'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해도 과연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까?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인공 귀 시술을 받은 청각장애인의 증언을 살펴보자.


청인들은 나의 청각 장애를 이해하지 못했고, 농인은 나의 인공 귀를 인정하지 않았다. (...) 나는 중요한 부분에서 언제까지나 들리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도 다들 느끼는 확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줄 수도 있었던 공동체로부터 거부당한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p.260




<볼륨을 낮춰라> 덕분에 청각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청각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청각장애를 향한 잘못된 시선까지 여러 관점에서 청각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볼륨을 낮춰라> 책은 독서모임 아니었으면 한 번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에 관심 갖던 분야가 아니라 읽는 데 조금 어려웠지만(글로 쓰기도 어려웠다ㅠㅠ), 덕분에 새로운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청각장애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인용하고 글을 마무리해 보겠다.


그들의 세계는 대다수가 듣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우리의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우리 대부분은 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를 매우도록 돕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인내와 공감, 이해심 또한 필요하다. p.287



<참고도서>

http://m.yes24.com/Goods/Detail/981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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