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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Sep 27. 2021

출근지옥은 100년 전에도 있었다

이안블레치포드,틸리 블라이스 <혁신의 뿌리>

시간은 자유를 주었는가 족쇄를 채웠는가

<혁신의 뿌리>는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혁신을 이끌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 따르면 예술과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100년 전까지 과학과 예술은 교류가 활발한 영역이었다. 과학자들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며, 악기를 다루었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들도 작품에 영감을 얻기 위해 화학약품, 분자 패턴 등 과학적 요소를 인용했다. 하지만 전문화가 심화되면서 예술과 과학은 완전히 단절된 영역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혁신의 뿌리> 중 '기계와 시간'을 다룬 부분이 가장 눈에 띄었다. 왜 시간관리가 중요해졌는지 알고 싶었다. 가끔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다. '기간 안에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루 만에 이 모든 일과를 해낼 수 있을까?' 부담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시간 압박 때문에 가끔 숨이 막히거나,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시간은 자유를 주었는가 족쇄를 채웠는가" 주제로 서평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



이 시기 노동에 대해 가장 충격적인 측면은 횡포에 가까운, 공장 기계에 의해 정해지는 작업의 속도라 할 것이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비가 오든, 맑든, 어둡든, 밝든, 노동자들이 언제 일하고 언제 쉴지 정하는 것은 계절이나 하루 중 시간의 변화가 아니라, 공장의 시계였다. p.257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의 흐름과 맞게 움직였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었다. 계절 따라 씨를 뿌리고, 경작하고, 추수했다. 시간의 간격은 매우 넓었으며 삶의 패턴은 단순했다. 배고픔의 위협에 시달릴 정도로 빈곤하고, 수명은 매우 짧았지만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기계가 상용화된 이후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일출과 일몰은 점점 삶과 거리가 먼 현상이 되었다. 인간의 시간은 기계가 작동하고, 멈추고에 따라 결정되었다. 하루는 24개로 나뉘었고, 분 단위, 초 단위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알람이 울리면 기분과 상관없이 일어나 일터로 향할 준비를 해야 했다. 또다시 알람이 울리면 작업 도구를 내려놓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에 속박된 존재로 변해갔다.

<일터로 가는 것, 방적 공장에서 집으로 오는 것, L.S 로리 (1928년)> 종종걸음을 치며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는 군중의 위로 독재적인 주인 같은 공장의 시계가 보인다. 


시계가 보편화된 이후 인간은 '생산적'인 존재가 되어야 했다. 더 빨리, 더 많이 일해야 했다. 영혼이 깨어나거나 만물의 이치 따위를 깨달을 여유가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계속 나아가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기계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기계'처럼 일해야 했다. 사색은 사치였고, 지친 몸 때문에 제대로 된 여가를 누릴 여유마저 없어졌다.


'견고한 모든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시계판 하나에는 실제의 시간을 보여 주고 있고, 마치 방적 공장은 따로 떨어진 우주에 있는 것처럼 다른 하나에는 '방적 공방 시간'을 보여준다. 방적 공장 시계의 시곗바늘은 공장의 수차가 돌 때만 움직였다. 수차가 정지되면, 방적 공장 시간도 정지되고, 이렇게 누락된 생산 시간기계의 움직임에 맞춰 노동자들이 메꾸어야 했다. p.267


1810년 경에 설치된 메클즈필드의 '파크 그린 방적 공장' 시계.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됨


강도 높은 업무와 초 단위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인해 현대인의 삶은 팍팍해졌다. 어딘가 쫓기듯, 날마다 불안하고 답답한 하루 일과를 보낸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고 사회는 경고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 더 많은 요구가 주어지고, 대부분 여기에 압도당해 무기력에 빠지거나 즉각적인 쾌락으로 도피한다. 더군다나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자동화로 인해 기계의 부품으로 일하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 창조적인 알고리즘 계산의 경계가 새로운 화두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작곡가 젬 피너는 <롱플레이어> 작품을 통해 '시간의 본질'을 다시 새겨볼 것을 강조했다.


작곡가 젬 피너의 <롱플레이어>는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감상자로 하여금 시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도록 한다.

음악은 컴퓨터에서 생성되고, 티벳 싱잉볼로 연주되며, 듣는 사람들에게 고요하고 마치 천상에 온 듯한 느낌이 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관객들에게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의 흐름에 대해 고찰해 보도록 권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을 100년, 1000년 단위에서 생각해 보도록 함으로써 음악은 지질학적, 우주론적 시간에 대해 깨닫도록 한다. 반대로 우리 삶 속에 분, 시간, 일 단위로 측정되는 데드라인이 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p.413


피너의 <롱플레이어> 작품은 지루할 정도로 매우 느린 곡이다. 피너는 시간에 속박되어 분주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조금은 멀리 보고, 여유를 가져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또한 시간으로 도배된 스마트기기에 얽매여 사는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미 시간에 속박되어 살아야 하는 현실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사색하도록 이끈다.


시계와 기계는 현대의 시간 개념을 만들어준 매우 혁신적인 도구다. 경계가 모호했던 시간을 통제하는 능력을 선사하는 반면, 개개인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주기에 맞춰 사람들은 스스로를 억지로 밀어 넣어야 했다. 여기, 과학의 역효과에 맞서 예술은 우리가 신기술에 끌려가는 모습을 마주하라고 외쳤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혁신의 뿌리> 덕분에 예술 작품을 단순히 아름답다/이상하다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작품 하나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그런 작품을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책 내용이 매우 낯설었던 터라, 읽을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지만 이 책 덕분에 작품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앞으로 전시회, 음악회를 갈 때 "작은 디테일"을 찾아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참고도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88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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