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네덜란드를 여행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은 예전에 친구와 베네룩스 여행 때 들렀으나 별 감흥이 없던터라, 로테르담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볼 것 별로 없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신기한 건축물 구경을 하고팠고 도시냄새를 느끼고 싶었다. 서울 같은 도시를 보고싶어 가게 된 곳, 로테르담.
이곳의 첫인상은 매!우! 좋았다. 센트럴 역이 너무나 세련되고 내부에 입점한 샵들도 인테리어가 너무 세련되고 깨끗해서 인천공항을 연상하게했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이런 큼직한 도시의 느낌이 그리웠어...
위의 센트럴 역을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느낌이 올거다. 이윽고 펼쳐지는 신기한 건물들과 큼직한 빌딩들..이곳은 독일의 폭격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새로 지어올린 건물이 대다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상을 받을 만큼 특이한 건물도 많았고 도시 전체에 새로지은 듯한 건물들이 가득했다.
센트럴역을 등지고 한걸음 한걸음 산책을 하는데, imax 영화관도 보이고, 인테리어 무지 세련된 까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것을 보고 무지하게 신이 났다.
우선 배가 고파 2015년 버거 1위를 한 집이라는 음식점을 찾았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오픈 키친이 반지하 같은 공간에 보이는데,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보는 재미까지 있었다. 종업원은 (대부분의 네덜란드인들이 그렇듯) 영어를 잘하고 친절하고, 내가 시킨 시저샐러드는 맛이 일품이었다. 신랑의 와규버거는 한입 먹어보았는데 완전 취향저격.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은 투뿔등심 이후 처음.. 패티도 이런느낌을 낼 수 있구나 싶었다. 난 맛나서 엄지 척 했는데 나중에 신랑이 소스가 좀 상한것 같다고 배앓이를 좀해서 그것때문에 점수 깍인 것 빼고는 음식도 빨리 나오고 괜찮았다.
음식점을 나와 걸은 거리는 온통 테라스 좌석에 앉는 네덜란드인들로 꽉 차 있었다. 외국인도 많은것 같고.
시끌시끌하고 게이커플, 마리화나 피우는 사람, 길 건너 즐비한 커피숍(안에선 마약이 든 쿠키를 파는)...분위기가 약간 홍대같다고 해야하나. 히피스러운 사람, 혹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아보이는 거리였다.
이 쪽은 이면도로라 대로의 세련되고 부티나는 거리 모습과 달리 좀 바쁘고 시끄러웠던 곳.
처음 센트럴스테이션에서 느꼈던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는 이면도로의 거리들을 보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거리는 깨끗하지 않았고, 밤이 되면 좀 위험할 것 같았다. 이 곳이 네덜란드 도시들 중 실업률 1위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기억도 나고..
길거리 중간중간을 다니며 보이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 딜로이트, ING, Rabo Bank, KPMG 등등..
이런 높은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비싸보이는 아파트에서는 대형 벤츠가 미끄러져 나오고, 그런데 바로 옆에는 거지가 구걸을 하거나 지저분한 골목들이 늘어서 있고.
빈부의 격차가 심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하나 사이에 두고 부촌과 빈촌이 공존했다.
나는 서울에서 이런 빈부의 공존, 즉 자본주의의 표상같은 찌를듯이 높은 빌딩숲, 그 안의 세련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들이 그득한, 그런 빌딩숲 바로 옆에 상권이 죽어가는 작고 가난한 골목길을 많이 봐왔었다. 그래서 로테르담이 불편했지만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평생을 독일에서 살아온 신랑에게는 이 도시가 많이 낯설었나 보다. 독일에서 지낸지 1년이지만 나도 로테르담의 이런 도시의 면모가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곳의 멋진 건축물들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시 방문하고 싶지는 않은 도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들르는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보아야 할 곳이 있다면 아래의 건축물들이다.
Markthal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으나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었고, 지하까지 엄청나게 많은 숍들이 있어 쇼핑이나 친구들과 마실 나오기 좋은 곳 같았다. 저녁에는 조명이 예쁘게 켜진다니 야경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그런데 이제는 늙었는지 이런 푸드코트에서 정신없이 먹는 건 적성에 안맞아서 간단히 구경하고 패스...
펜슬하우스와 큐브하우스는 바로 옆에 위치하는데, 큐브하우스의 경우 관람료 3유로 정도 내면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들어가서 보니 계단이 너무 좁아 위험해서 나는 여기 못살겠더라. 창이 너무 작아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하지만 밖에서 보는것 처럼 기운 느낌은 없었고, 특히 부엌은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신랑은 혼자 살면 살만할 것 같다고 했는데, 애기 있는 집은 위험해서 못살것 같았던 집.
신기한건 이 집들 모두 실제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것. 관광객이 이렇게 항상 북적거리는 곳은 살기 불편할 것 같았다.
로테르담은 에라스무스 다리와 바닷가 구경을 끝으로 막을 내렸는데, 이 날 너무 덥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내가 기대하던 유럽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기자기한 소도시의 맛도 없고, 딱히 관광지여서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며, 삐까뻔쩍한 건축물과 높은 빌딩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있고 주변환경과 조화롭게 발전한 도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컸고.
건축학도들에게는 매력있는 도시일 것 같지만, 이번에 이 도시를 돌며 한 도시가 주는 느낌에 조화로움과 편안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취향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잠시 둘러본 거라 실제 사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위해 왔을 땐 암스테르담,덴하그, 델프트 등 네덜란드 여행하며 경로상 가까운 경우 한번쯤 들러봄직 하나 오직 로테르담만을 목적으로 올 도시는 아니라는 생각.
실망이 좀 있었지만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경험과 판단이기에 이 경험도 소중하다. 모든 경험에는 교훈이 따르는 법. 다음번엔 또 새로운 곳에 도전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