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후 줄곧 NRW주에만 있다보니, 다른 주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뤼데스하임, 코블렌츠를 다녀오며 Rheinland-Pfalz에서 Hessen에 이르는 멋진 와이너리와 라인강의 풍광을 봤다면, 베를린에서는 자유로운 도시의 느낌을, 함부르크에서는 항구도시만의 탁트인 분주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각 분데스 별로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독일이기에, 내가 못가본 주와 도시들을 탐험하고 싶다는 맘이 간절했다.
지난 번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온 후, Baden-Württemberg 에 부쩍 관심이 생겼고, 그 곳에 있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 검은숲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빽빽하게 나무가 심겨있어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초록이 아닌 검게 보일 정도라는 슈바르츠 발트.
그리고 그 검은숲 중턱에 위치한 이름도 귀여운 티티제.
이 곳에 가보고싶은 생각에 무려 3달 전부터 예약해 다녀오게 된 그곳, 프라이부르크 여행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직장인이 금요일까지 일하고 토일 일정으로 여행을 한다는 건 역시나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긴 했지만, 토요일 아침 7시 30분 차로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설렜다.
오랜만에 가는 중앙역에서 맛있는 치킨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프라이부르크행 기차에 올랐다.
ICE라서 워낙 빨라 대략 3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중간에 만하임에 잠시 내려 갈아타긴 했지만, 도시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도착해 친구들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며, 우리는 우선 독일식 점심을 먹고 티티제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렇게 Titisee라고 쓰여있는 기차역의 안내판을 보니 실감이 났다.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차에 올라 약 40~50분 정도 가면 티티제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사진을 찍기보다 눈에 담기 바빠 사진이 없지만, 티티제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검은 숲의 속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라인란드 팔츠의 와이너리 풍광을 보았을 때의 감동처럼, 이곳 검은숲의 풍광도 너무나 아름다워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오기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색도 예쁘고 나무 모양도 그동안 못보던 스타일이라 리프레쉬가 되었다.
이윽고 도착한 티티제역.
내려서 잠시 걸으면 이렇게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독일은 북쪽, 동북쪽을 제외하고는 바다와 접한 부분이 없지만, 곳곳에 바다를 방불케하는 규모가 큰 호수들이 많다.
아헨에 살때도 Ruhrsee는 여름이면 학생들의 물놀이 장소였고, 남쪽의 Bodensee등 유명한 호수들이 독일에 굉장히 많다.
티티제는 규모는 매우 작은 아담한 호수였지만,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나무들의 풍경과 더불어 장관이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저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호수 물위로 부서지는 햇살만 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3월이라 아직은 쌀쌀해서 무릎담요을 덮어야 했는데, 4~5월에 꽃 필 때 오면 정말 대박일 것 같았다.
지금도 예쁜데 꽃으로 둘러싸이면 어떨까....
느낌은 살짝 규모 큰 석촌호수 같을 것 같은 느낌.
이 호수를 둘러싸고 휴양할 숙박시설들이 많았는데, 근처 상점들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딱 관광지 느낌.
숙소는 오히려 좀더 산 속 깊이 있는 호텔이나 높은 곳에 잡아도 좋을 것 같았다.
굳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티티제에서 산 정상의 리조트까지 이동 가능한 버스노선이 잘 되어있으니(단, 오후 6시 정도까지만 운행하는 것 같으니 시간표 주의!) 산위의 높고 조용한 곳에 숙소를 잡아도 문제 없다.
Baerental쪽에도 숙소가 많았고, 바로 옆에 Lidl도 있어서 밥해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검은 숲에는 뻐꾸기 시계가 유명한데, 진짜 한국에서 자주보던 싸구려 뻐꾸기 시계가 아니라 정말 한땀한땀 수작업한 뻐꾸기 시계들이 너무 예쁘고 정교해서 놀랐다.
작은 시계에서 큰 시계까지, 하나도 디자인이 같은것이 없어서 시계 구경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정말 하나 사오고싶었다는...
그리고 뻐꾸기 소리가 정말 살아있는 뻐꾸기 소리를 녹음한 것 같았다. 너무 청량하고 좋았다.
곧 오스턴이라 이곳에도 사방에 토끼장식이 많았는데 여기서 만난 리스는 너무 예뻐서 하나 사고 싶었다.
지역 특산품인 겨자, 햄, 오일 등 다양한 상품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던 기념품 샵.
전망대를 가려면 꽤 많이 걸어야 하고 아직 산 위에는 눈이 있어서 전망대 구경은 포기하고, 스키장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았는데, 3월 중순인데도 다들 너무 신나게 스키를 즐기고 있어 부러웠다.
우리만 유일하게 스키타러온 사람이 아닌 관광객이라 모두의 시선을 받아 좀 민망했지만, 스키타는 사람들 보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한잔이 행복했던 곳.
그리고 우리나라는 스키장 갈때도 약간 패셔너블하다면, 여기는 정말 동네 뒷산에 썰매타러 온 마냥 가볍게 스키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은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그 동네 뒷산 놀러온듯한 가족같은 편안한 분위기가 참 부러웠다.
산 위라 해질무렵이 되니 많이 어둡고 추워졌다.
해지기 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가려고 역으로 이동했는데 분홍노을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고요하고 어두운 숲의 저녁시간이 너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어린 시절, 아빠와 산에서 모닥불 피우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가 불 꺼질 때쯤 고구마 구워서 호호불며 먹던 기억도 나고...
숲 속의 밤은 조용하고 깊어서, 나도 모르게 차분해진다.
눈 속에 솟은 나무들이 어둠속에 묻혀가고 이곳저곳에 불빛이 켜지는 검은숲의 밤을 보니, 다음에는 산의 숙소에 머무르며 이 고요와 정적을 즐기고 싶더라.
맘 정리하는데는 이만한 데가 없는듯 하다.
시내로 내려와 주린 배를 채우러 구글 평점이 매우 높은 베트남 쌀국수집을 찾아갔는데, 토요일 저녁이라 만석이었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나오긴 했지만, 인테리어가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이 곳 프라이부르크는 다음 여행기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정말 한국의 상수동 같은 느낌이었다.
홍대입구역 근처 말고 합정동, 상수동 같은 힙하고 아기자기한 개성있는 가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런데 이런 밥집이?이런 인테리어 가게가? 할만한 멋집들이 곳곳에 숨어있었고, 이날 베트남식당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두번째로 찾아간 태국식당 역시 굉장히 맛도 좋고 인테리어도 완전 내스타일에 서비스도 좋고 청결해서 난 정말 프라이부르크 살고싶다....를 반복했다.
작은 도시인데 있을 것 다있고 너무 예쁜...그리고 산과 호수가 지척이라니 이건 그야말로 배산임수 명당.
곳곳에 이런 Tor들이 남아있는데 색이 초록을 많이 써서 신기했다. 원색까지는 아니지만 NRW보다 훨씬 알록달록한 느낌.
이 곳에서 유명하다는 Oxenfleisch를 점심으로 먹었는데 지나가다 oxen벤치 발견해서 한컷.
매일 똑같던 독일생활에 활기가 되어주었던, 검은숲과 티티제, 그리고 프라이부르크와의 만남.
오랜만에 행복한 꽉 찬 하루였다.
프라이부르크 시내는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