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독일에서의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2017년에 나온 기사이지만 지금까지도 독일에 대해 잘 설명한 글이라 생각해 공유한다.
이 중 일부 내용은 변경된 것들도 있지만 기본적인 틀은 여전히 같다.
신동아에서 나온 글인데 허핑턴 포스트의 'Why Germans Work Fewer Hours But Produce More: A Study In Culture'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게 아닌가 싶게 두 기사의 내용이 겹쳐서, 둘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1년 유급휴가 30일, 일 이외의 시간은 철저히 개인생활을 중시, 여가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크고 작은 Verein이 활발히 활동중이며, Elternzeit와 Elterngeld같은 가족을 위한 복지제도와 수당이 잘 되어있고, 낮은 청년 실업률, 저렴한 주거비용, 일할 땐 일만 하는 생산성 중심의 일문화 등은 독일을 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제도 및 개념들이기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들이다.
하지만 독일 이민이나 독일 생활을 꿈꾸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내용은 모르고 막연하게 독일이 좋겠지,,,하는 생각으로 해외 진출을 꿈꾸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좋은지 어떤 특징이 있는 나라인지 아는데 이 기사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의 장점은 확실히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런 나라의 분위기와 방향성이 안맞을 수도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어디나 장단이 존재하기 마련이고...그래서 이 곳이 유토피아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큰 단점들이 장점으로 바뀌는 곳이기도 하기에 좋은 점은 분명 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적어도 크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을테니 이 기사들은 물론, 독일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터전을 옮기는 것을 생각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이 글을 읽다가 나도 처음으로 영국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알게되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헉...하며 뇌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꽤 겪었기 떄문에 한국에서 일에 치였거나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다 읽고 나면 이 책 리뷰도 한번 해야겠다.
그리고 좀 뭐야, 싶게 들릴 수도 있는데, 이런 독일의 여가중시 문화와 적은 노동시간 덕에 내가 요즘 겪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 길고 긴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것이다.
신랑은 독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 기사 내용처럼 Verein 1~2개에 가입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고, 이에 그의 주말은 거의 Verein활동으로 채워진다. 비슷한 운동수준의 친구들과 팀을 이뤄 매주 시합을 하고, 겨루고, 매 주말의 시합을 위해 주중에도 운동 겸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일자리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자 삶의 활력소다.
이렇다보니 퇴근 후 시간,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그의 취미생활로 쓰이고, 그 외에는 독서, 게임, 나와의 여행이나 산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지고, 나와 함께 하는 시간 외에도 본인 혼자 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뭘 어쩔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그에게 없으며, 오히려 여가시간을 더 가지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이렇게 산다. 경험상 거의 95%이상...그 취미가 운동이든,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등산이든, 뭐든지 자신이 좋아서 주기적으로 하는 뭔가가 모두에게 있다.
이렇다보니 시간이 많이 주어졌을 때 뭘 할지 몰라 답답해하고, 긴 연휴기간 동안 괜히 짜증이 나있고, 연휴 끝에 회사를 가면 오히려 안정감을 찾는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이런 내가 왜이러나 싶었는데, 최근에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란 책을 읽다가 나름의 답을 조금은 찾았다.
이 책에 의하면 일에 깔려 사는 삶이 당연한 한국에서, 취미나 여가는 바로 소비로 이어진다. 짧은 시간 빠르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게 소비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집을 나서는 순간 어마어마한 자본의 힘이 골목골목까지 느껴질 정도로 상품과 서비스 판매가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으니까. 이는 삶을 편리하게도 하지만, 소비를 통해 인간이 정체성을 찾는 것은 실상 불가능하고, 오히려 그 소비로 인해 더더욱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악순환을 만들기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 여가라 할 수 없다.
또한 일을 자아실현과 연결시키는 것도 오랜 자본가들의 노동자 관리법이기도 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도 여가를 맘껏 즐기지 못하는데 한 몫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노예들(노동자들)은 근로시간이 너무 많아 일 외에는 자신의 인생이 없는데, 그 와중에 스스로 더 성실한 노예임을 자신들끼리 자랑하고 경쟁한다는 대목이었다. 내가 야근을 많이 하던 시절, '나 이번 달에 초과근무 40시간 넘었잖아'라고 하면 '야 나는 50시간은 한 것 같아'라고 하며 은근히 그 노동시간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문화가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나도 그 당시 그렇게 오래 일하는 것이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자랑삼아 초과근무 시간을 말했던 것이다.
노예들끼리 누가 더 노예스럽나를 자랑한다는 표현이 그래서 훅 들어오더라. 이 모습을 보며 기뻐할 사람은 자본가들이 아닐지...
그리고 이렇게 오랜시간을 일하던 사람들은 여가를 누려본 적이 없어서 여가를 즐기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을 뿐더러, 여가 또한 어릴 때부터 학교나 가족, 내가 속한 그룹이나 기관 등에서 자연스레 '배웠어야'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물론 독일의 학교에서 '여가'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매일 저녁 늦게까지 야자를 시키지 않고, 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치고, 성교육도 제대로 하고, 방과 후엔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산재한 Verein에 가입해 활동하며 협동심을 기르고 또래와 어울리며 사회성도 기르고, 자아실현도 한다. 주말에도 부모가 회사 안가고 집에 있으니 동네 산에 가면 가족이 모두 다같이 마운틴 바이크를 즐기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즉 이 곳의 아이들은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답안 1개 더 맞추는게 아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험할 기회를 가진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자연스레 찾고, 그 과정에서 직업도 선택하고 취미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 얼굴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주말에 피곤에 쩔어 누워있는 맞벌이 부모님과 살며, 학교 시험성적에만 집중하는 문화에서 어떻게 내 취미를 찾는 연습이 되겠는가.
이는 비단 내가 회사 생활을 한국에서 오래했기 때문만이 아니고, 전체적인 사회의 분위기가 취미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취미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의 취미, 음악감상, 영화 감상, 독서, 여행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주말쉬고, 일년에 유급휴가 30일을 의미있게 사용하려면 이 것만으로는 힘들다. 소비가 여흥이 아닌 이 나라에서 매일의 일상을 의미있게 살려면, 취미는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이 제일 좋고, 뭔가 배워서 지속적으로 해야한다. 이 곳의 Verein 운동을 한다는 것은 밤에 아파트 단지 내 공터에서 배드민턴 치는 수준이 절대 아니다. 신랑이 활동하는 Verein에는 주니어 국가대표 출신들도 많다.
즉 취미에서도 긴 시간의 연습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뭔가 새로 시작해서 Verein에 들어간다는 게 사실상 쉽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살기로 한 이상 뭔가를 하기는 해야하는데...
도무지 배운 적이 없는 이 여가생활 잘 즐기기를 소비 빼고 독일에서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그야말로 잘 놀 수 있을지가 나의 요즘 최대 고민이다. 이게 안되면 독일에서의 삶은 무지하게 고독하고 재미없다.
그래서 2021년 나의 목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기, 여가 즐기는 법 배우기, 취미 만들기가 되었다. 뭔가 집중할 대상을 일 이외에서 찾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이 곳에서 잘 살기 어려울 것 같다.
참 이런걸 이 나이에 와서야 찾고 있다는게 좀 슬프기도 한데, 반면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상황의 변화가 아니냐는 어느 친구의 말처럼 한번 자~알 찾아봐야겠다.
독일에 오신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이 살기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 여가즐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다같이 잘 찾아보았으면 좋겠다.(이미 찾으신 분들은 후기 공유를 부탁드린다.)
원래 무지 좋아하던 여행은 코로나로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된 요즘, 더더욱이나 절실하게 여가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감염자 수 일정수준 이상의 지역은 당분간 반경 15키로 내로만 이동 가능하다는데, 이 와중에도 한번 잘 찾아보겠다. 행복을 정복하기 위해. 모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