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술관은 사실 내가 독일에 살지 않았으면, 미술관 가는게 취미가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을 것 같다.
보통 유럽여행을 오면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 같은 이름 정도를 알 것이고,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에 있는 미술관을 굳이 찾아가진 않을테니까.
나도 원래 미술에 그닥 관심이 없고 왜 돈내고 저기가서 오랜시간 그림을 보는지 이해가 안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다 우연히 네덜란드 여행을 미대 나와 영화미술 하는 언니와 함께 하게되었고, 언니는 암스테르담이 미술관의 보고라며 나에게 여기 왔으면 꼭 가봐야하는 미술관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 중 두군데를 갔는데, 반고흐 미술관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이었다. 시립 미술관이었던가? 여튼 이 곳은 현대미술 위주라 난 역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반고흐 뮤지엄은 달랐다.
1층부터 4층까지 쭉 그의 인생사와 시기마다의 작품을 둘러보면서, 아 이런 재미구나- 사람들이 이런 즐거움이 있어 미술관을 오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다.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의 벚꽃 작품들의 선명한 붓터치와 하얀색, 연두색의 색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림이란 것도 글처럼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그가 살았던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기에 어찌보면 역사를 읽는 도구이기도 하고, 이야기이기도 하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고 나서 미술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달라졌다. 한권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듯이, 그렇게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가 퇴근후에 힘들거나 뭔가 나를 채우고 싶은 기분이 들때면 덕수궁 미술관이든 한가람 미술관이든, 대림미술관이든 전시를 보러 가곤 했다.
주로 혼자 보러 가서 이런저런 새로운 그림과 그에 얽힌 다양한 사실과 이야기들을 알게되는게 나의 메마르고 지루한 일상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미술관을 다니다가, 독일에 와서 독일 내 미술관을 집 근처와 내가 사는 도시 근교는 다 찾아 돌아다녔던 것 같다. 뒤셀도르프의 미대가 상당히 유명하다는 것도, 이 동네 미술관을 다니며 쿤스트 아카데미 출신의 전시를 보러다니며 알게되었다.
그러다 이 근방에 가볼데는 다 가봤다는 생각에 계속 전방위로 근처 미술관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다.
수집가가 나라에 기증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엄청난 부자였는지 이 미술관에 그 유명한 밤의 테라스와 별이 빛나는 밤이 있다. 그 외에도 가보면 어, 이 그림 나 아는데-할만한 그림들이 꽤 걸려있다.
소지한 컬렉션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위치가 국립공원 한복판이라 해외에서 배낭여행이나 단기 유럽여행와서 찾아가기에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찾아가기 멀기 때문인 것도 같고, 규모가 엄청 크지는 않기도 하고...
대도시에 위치한 미술관도 아니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뒤셀도르프에서 원래는 1시간 40분가량 걸리는 곳인데, 이 날 교통상황이 좀 안좋아서 밀린 관계로 결국 2시간 30분가량 걸려 도착했다.
아이 데리고 처음으로 강행한 미술관 행이라 이런 예상치 못한 딜레이가 큰 부담이었다. 사실 이 날이 내 생일이라, 1년동안 꼭 가보고 싶던 이 곳을 그야말로 '감행'하여 나들이를 떠난거였다. 가족 모두 컨디션이 100이 아니었고, 당일치기하기에 좀 먼 거리기도 했으며, 아이는 미술관에 1도 관심이 없을 것이기에 우리의 나들이는 사실 예정된 고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후 단 한번도 미술관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이가 좀 있으면 2살이 되는 이 시점에 한번 정도는 일탈을 해도 되지 않나, 한번은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무리인 줄 알면서 출발했었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왕복 약 4시간 30분 가량의 시간은 21개월 아이와 함께하기엔 확실히 무리였고, 예상대로 아이는 미술에 1도 관심이 없었으며 그 곳의 문에만 관심이 있어서 매점에 있는 일하시는 분들 출입문을 계속 열려고 했다. 전시장은 고요한데 아이의 큰 웃음소리가 울려퍼졌고, 유모차 안에서 계속 양말을 벗으려고 했다. 작품을 보는 둥 마는 둥 스쳐보는 미술관 관람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국립공원 한 가운데라 그런지 굉장히 추웠다. 결국 이 날 우리 모두는 지치기도 엄청 지쳤고, 온 가족이 이후 5일 간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했으며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연말 휴가를 어찌보면 망친 주범이고, 가족 모두에게 외출을 고집한 대가로 죄책감을 안게 되었던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 스치듯이 관람한 몇점의 그림들과 장소가 주는 느낌을 스케치하듯 짧게라도 남겨보려 한다.
미술관은 언급했듯이 국립공원 내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크뢸러 뮐러 뮤지엄 입장권과 국립공원 입장권을 모두 구입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자동차로 가는 경우 자동차도, 자전거의 경우 자전거도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한다...
그래서 관람료는 별로 싸지 않다는 점.
내부로 들어서서 안내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좀 황당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고, 또 역시 상업의 나라 네덜란드 답다고도 생각했다. 여기는 묘하게 자본주의 느낌인게 돈이 많이 들고 돈 받을 수 있는데서는 다 받아내는 느낌.
직원들은 친절했고 그림은 훌륭했다.
반고흐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점묘법을 이용한 그림들도 너무 아름다워서 여유있게 둘러보았으면 참 좋았겠다, 생각한다.
아래 그림은 마타하리-인데 지난 여름 짧은 한국행에서 본 옥주현 주연의 마타하리 뮤지컬이 생각나면서, 그녀가 실존인물이라는게 실감나더라는...이곳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마주할 줄이야.
국립공원 내부라 외부의 조각공원도, 입구로 가는 길도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고요하고 깔끔한 느낌.
오랜만에 느끼는 겨울 초저녁의 시원한 느낌이 주차장에서 많이 났다. 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향수를 느끼곤 하는데, 이상하게 이 주차장 풍경과 그날의 냄새에서 어릴때 아빠 엄마와 산이나 계곡으로 놀러다니고 캠핑하던 기억이 나 그리워졌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난 후 밖에서 보는 밝은 실내의 빛은 항상 아름답다. 그리고 실내를 실제보다 더 황홀하게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네덜란드 여행을 할 때 창문에 커튼을 거의 안치고 이런식으로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해둔 집들을 많이 봤는데, 그때마다 꼭 저 아늑한 공간이 너무 좋아보여 성냥팔이 소녀가 된 느낌이다.
다양한 점묘법 작품들의 색감은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이런 그림들은 좀 소장하고 싶다....사본으로라도.
밝지 않은 색감인데도 눈을 끌었던, 밤의 차가운 느낌을 잘 살린 그림.
그 유명한 고흐의 작품.
오랜만의 나들이였는데 밥으로 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관람을 하고, 신랑과 아이에게 미안한 맘만 가득한 채로 문을 나섰던 이 곳.
가볼만 한 곳이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리고 독자여러분들은 아마도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아직 어린 아이와 미술관을 가는 것은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본인에게도 아이에게도 고역이다...
만약 네덜란드 여행중이시며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마도 이곳을 좋아하지 않으실까 싶다. 루이지애나를 가보지는 않았는데, 수많은 책과 영상을 통해 접한 그 곳의 느낌이 크뢸러 뮐러에 들어섰을 때 상상하던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여튼 아직도 진행중인 우리가족의 감기와의 싸움이 어서 끝나길 고대하며,
애엄마의 강경한 외출 시도가 혹독한 감기투병으로 결론난 이 날을 기억해서 아이와의 여행이나 즐길거리를 결정할 땐 최대한 현명하게 절충하여 시도하는 지혜를 길러야겠다.
슬프게 끝난 짧은 여행기이지만,
오랜만에 남기고 싶어서-
밖에는 코로나 이후 시작된 silvester 기념 폭죽놀이가 한참이다.
그동안 오래들 참았나보다....
2023년이 곧 밝는다.
새해는 좀더 겸손하고, 마음이 정답고, 고운 말을 쓰는, 나를 다듬음으로써 조화 속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한 해이길.
많은 챌린지들과 고민들이 남아있지만, 이 해 안에 또 많은 새로운 시도와 결실들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