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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벨기에 바다 여행이 나에게 준 것

Ostende

by 봄봄

2주 간의 키타 방학이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 나의 회사 복귀로 하루 4시간 홀로 집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봐야했던 신랑도 너무 힘들었고,

나도 복귀를 간절히 고대했으나 막상 출퇴근하며 매일 일하고 아이보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우리의 7월 경 한국행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동안 쌓인 휴가도 소진하고 어린이집 시작 전에 해야하는 100프로 가정보육을 한국에 가서 가족과 같이 할 생각으로 한국행을 선택했었다.

좋은 기억도 있지만 약 6년간의 독일생활로 나조차 독일여름의 시원한 날씨에 익숙해졌는지, 한국의 습하고 끈적한 여름, 그리고 열대야가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조금 더위가 가시자 찾아오는 장마도 육아를 힘들게 했다.

30년을 매년 겪은 더위이고, 여름의 습한 날씨와 장마로 인한 비냄새 등 나에게 주는 여름만의 행복감과 향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전쟁 속에서 이런 날씨는 그저 고역일 뿐이었다. 아이의 시차적응도 어려움을 보태주었고...




그래서 이번 여름 키타 방학 동안은 한국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독일에서 늘 그랬듯 우리 부부 둘이 온전히 아이를 돌봐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국행, 캐나다행 이외에는 유럽내 그 어디서도 아이와 외박을 한적이 없었다.

첫 유럽내 여행에 대한 가벼운 기대감과 아이와 에어비앤비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준비했던 벨기에 바닷가 2박 3일 여행은 좋았지만 무지하게 힘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일단 벨기에 물가가 독일 물가의 딱 2배 이상이었다. 특히 마트 물가가 어마어마 했고, 우리가 방문한 도시가 은퇴자가 많이 사는 휴양도시다 보니 메뉴 자체가 3코스로만 파는 경우가 많아 인당 최소 50유로씩 드는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퀄리티가 좋다면 그 돈을 내더라도 기분 좋게 즐겼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 벨기에 음식을 파는 상황에서 맛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근처 까르푸에서 우리가 산건 빵, 우유, 크림치즈, 계란, 올리브유, 아이 과자가 전부였는데 모두 50유로 정도가 나왔다. 독일에서 장을 봤다면 가장 비싼 마트인 rewe에서 장을 봤어도 20-25유로에 해결 가능했을거다. 유기농도 아닌데 500ml 올리브유가 10유로 하는게 헛웃음이 나왔다. 유기농 올리브유가 독일서 5유로 정도인데...


여행이란게 새로운 환경이기에 당연히 내가 익숙했던 상황과 다르지만, 내가 기준점을 삼았던 근거지의 생활과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가가 비싼데 퀄리티는 떨어지니 돈이 가치를 잃었고, 애초에 유럽 내 여행에서 식도락 여행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가 뒤셀도르프에 현저히 못미친다고 생각하니 음식 해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한국 캐나다 여행 모두 가족의 집에서 머무르다보니, 가정집에서 다 갖춰진 상태에서 현지인의 조언을 받아가며 쇼핑이나 장보기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새로운 나라에서 굳이 입맛에도 맞지 않는 음식을 사먹고 장보고 매 끼니를 걱정해야하는게 큰 스트레스도 다가오더라. 중간 중간 아이가 불편해하고 찡찡거리면 그것 케어하면서 장보고 밥해먹고 하는게 보통일이 아니다보니, 휴가를 왔는데 그냥 바다옆에서 내집이 아닌 불편한 장소에서 육아를 하는 느낌? 이랄까...


에어비앤비 숙소는 새로 지은 건물이고 부엌 등 다 럭셔리였지만, 에어비앤비 특성상 소파 위생이 좋지않았고 침대도 불편하고 주방 조리도구들도 충분치 않고 뭣보다 그냥 몸에 닿는 모든 것에 대해 찝찝함이 있어서 첫날부터 집이 그리웠다;;


신랑은 원래 밖에서 자는걸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지만, 나는 어딜 가든 머리만 대면 잘 자고 대체적으로 까다롭지 않고 잘 자고 잘 적응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그래서 여행을 즐기기도 했고) 아이가 있고 여행 성격이 내가 원래 하던 도시 탐험 이런게 아니다보니 휴양지에서 시간 보내는게 음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었다. 게다가 날씨도 비오다 햇빛났다 아주 변화무쌍해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었고....


적고보니 더더욱 힘들었던 여행같은데, 이번에 이 여행을 함으로써 내가 깨달은 중요한 점들이 있기에 앞으로 불필요한 혹은 불가능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도시의 재평가

우선 내가 늘 독일생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이스가 유럽이라면 벨기에나 여타 다른 도시보다 뒤셀도르프가 매우 좋은 선택이구나 싶었다. 물가가 저렴하고, 아시아인이 많아 상대적으로 이방인 느낌이 적고, 유기농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한국 포함 아시아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수월하고, 도시가 작지만 있을건 다 있어서 생활이 편리하고 동선이 크지 않다는 점, 대도시 변두리의 슬럼화된 지역이 없는 편이라 전체적으로 도시가 아담하고 깔끔하다는 점? 등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개편이 되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뜻밖의 내 처지에 대한 감사한 깨달음이랄까...그래서 역으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환경이 재평가가 되면서 만족도가 올라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내스타일의 여행을 포기하기

그리고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과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가능한 스타일의 차이를 명확히 깨달았다.

이왕 가는거, 가는 길에 그동안 관심있던 이런 저런 도시에 가볍게 들러 둘러볼 생각이었기에 가는 길목에 있는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한번 가볼까 싶은정도였던 Antwerp에 갔다가 궂은 날씨와 소나기, 아이의 징징거림 및 유모차 운전과 아이키우기에 최적화되지 않은 도시 구조와 스타일에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고나서 도시탐험은 저 너머로 이제 넘어갔고 아이랑은 무조건 체험여행이나 휴양여행만 가능하단 걸 몸으로 체험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그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유럽에서 식도락 여행은 아예 기대를 말자

집에서도 한식만 주로 먹는 내가 여행가서 갑자기 서양식을 즐길 것도 아니고, 애가 있음 매일 장보는 것도 낭만이 아니라 일이고 미션이기에, 독일사람들이 많이하는 Ferienwohnung가서 2주 정도 지내면서 바다 근처에서 밥해먹고, 바다에서 하루종일 노는 이런 여행은 나에게 많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신혼여행 가서도 이런식의 휴양식 여행이 3일 지나니 답답했는데, 밥도 안주는 별장에서 내가 요리하고 애도 보며 어디 시골집에 짱박혀있는다?

내 집에서도 매일 밥 해먹는게 일인데, 나가서 불편한 남의 숙소에서 계속 밥을 지어먹는다는게,,, 외식 만족도가 떨어지는 유럽이다보니 이건 우리스타일 아니라는 걸 자각했고, 만약 할거라면 단기로 하되 모든 조미료와 한국재료 등을 바리바리 보따리를 싸가야겠다고 생각. 거기서 뭘 사려면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이 천정부지다.


식도락 여행할거면 한국가자

금강산도 식후경, 을 온국민이 외치는 한국에서 온 나에게 여행은 좋은 풍경보고, 이쁜 까페에서 달달한거 입에 넣고 힐링하고, 잘 꾸며진 까페 정원에 애들 풀어놓고 놀리고, 뭣보다 지역마다 유명한 맛난거 찾아다니며 먹는 재미다.

이 먹는 재미를 제외하면 여행의 재미는 반 이상, 아니 거의 70~80프로 사라졌달까.

이번 여행에서 바다가 너무 좋았음에도 불구, 다시 이런식의 여행은 아마 안할것 같다고 깨달은게, 음식 먹는게 불편하고 힘들면 난 그게 힐링이 안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여름 날씨가 아무리 별로라도 매년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낼 것 같다 아마도.

터키나 그리스 all inclusive 호텔들도 알아봤는데 5일에 3인 가족 3천유로 가까이 하더라. 음식도 계속 먹음 질릴거고...

이럴거면 그냥 집있고 차있는 한국가서 편히 실컷 먹고 몸보신하고 오지 싶다.


이런 점들이 안가봤으면 깨달아지지 않았을 것들이기에, 이번 여행은 의미가 확실히 있었다. 배웠다.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과, 가능한 여행의 모습과, 우리 가족을 위한 여행의 모습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새로 그려볼 수 있었다.


이렇게 안좋은 점만 쓰니 그저 싫었나보다 싶겠지만,

아니다.


날이 좋았던 둘째날 아이와 처음으로 바닷가 파도에 발을 담그고 야생 물개도 보고, 같이 물장구 치고 모래사장에서 놀았던 건 잊지못할 것 같다.

바다 자체는 정말 너무 좋았다. 나의 어린시절 여름은 온통 바다이기도 하고, 독일 사는 내내 3시간이면 오는 이 바다를 가족끼리 한번도 안와봤다는게 새삼스러웠고, 날이 좋으면 멀리 영국땅까지 보인다는 이곳에서 그야말로 그냥 바다가 아닌 대양을 봤다는게 좋았다.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가를 아이가 잘때 혼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봤다. 노란색, 에머랄드색, 짙은 파랑색, 층층이 색색을 발하는 바다와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게 감사하고, 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순간들이 소중했다.

아이가 파도를 느끼며 까르르 웃고, 처음으로 대구 튀김을 먹어보고, 갈매기를 보고, 지나가다 만난 영국학생들의 작은 음악회에 흥을 못이기고 춤추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물개가 사는 지역이라고 해서 두리번대다 발견한 고개만 내놓고 수영하는 물개를 보고 '안녕~'하는 아가가 너무 예뻤다.

오전에 썰물이라 한참을 들어가서 파도를 만났을 때, 오랜만에 보이는 탁트인 바다에 전날 밤 힘들었던 기억은 잊고 신랑과 아이와 얼굴이 활짝 피게 환하게 웃었다. 너무 행복했다.


오후에 밀물이 들어오자 한층 풍부해진 바닷물과 좀더 거칠어진 파도에 발이 젖어도 웃음이 났다.

동해바다에 가면 늘 걷던 방파제와 등대를 보니, 한국에 온 듯 마음이 몽글했다. 그 길을 아이와, 신랑과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유럽와서 처음으로 가본 수산시장에서 새우 등 회을 작은 그릇에 두고 팔아 그걸 먹으며 걷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말린 생선을 걸어놓은 시장을 보니, 동해바닷가에 오징어 말리던 큰 해변이 생각났다. 모든 장면에서 향수가 밀려왔고 마음 속에 울컥한게 차올랐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나에게 많은 걸 채워줬던 여행인 건 맞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짧은 여행이 나에게 우리가족의 앞으로의 여행 방향도 짚어주었고, 잠시지만 힐링을 주었다.

아이가 등원한 날, 휴가를 내서 혼자서도 한번씩 바다에 오고 싶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다 가고싶다.

자연이란 건 사람을 품어주고 자신을 내어준다.

그런 품에 한번씩 안기면서 나의 타지생활이 힘들때 한번씩 기운을 얻고싶다.


열심히 운전해준 신랑도 고맙고, 우리 같이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다짐했다.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우리가 다같이 편한게 어떤 길인지 같이 경험하며 고민하자, 여보.

함께 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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