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좋은, 혹은 좋아지는 이유

by 봄봄

연말이라 이런 저런 모임과 행사로 조금은 바빠진 요즘이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 정말 안난다'고 말했던게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것 같은데, 이 곳 독일은 크리스마스 마켓 덕분인지 거리 곳곳이 서서 글뤼바인 마시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상점들은 밤새 크리스마스 장식조명을 켜두어 아침 8시에 길거리를 걸어도 어슴푸레 푸른 아침 속 동화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여기 살면서 느끼는 건 일상이 참 단순해지고 잡념이 없어진다는 거다. 우선 금전관계가 깔끔하다. 밥을 먹어도 누가 사거나 사주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계산대에서의 실랑이가 없고, 연장자가 사는 분위기도 아니다. 돈과 권력이 연결된다는 전제 하에서 보면, 독일은 나이와 관계없이 동등하고 친구가 될수 있다. 나이나 성별, 직급으로 인한 서열이나 그로 인한 금전상의 일방성이 없다. 그냥 자기것은 자기가 내고, 그 뿐이다. 그럴 일도 잘 없겠지만, 교수와 학생이 같이 카페에 가도 각자 계산이란다. 이런건 정말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이색적이다. 부장님이랑 스타벅스 가도 여긴 아마 각자 낼거다.

그런데 이런 더치페이가, 난 편하다. 얻어먹으면 항상 반대급부로 내가 뭔가를 더 해야한다는 빚진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내가 나이가 많거나 좋은일이 있으면 쏴야하는 것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남의 돈이고 내 돈 아니다, 비싼거 먹자, 이런 심보가 얻어먹는 입장이나 사주는 입장이나 좀 불편했던 것 같다. 가끔은 이런 '관행'들이 폭력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말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여튼 이 사주고 얻어먹는 문화 속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와 신경전에서 벗어난 지금은 그냥 잡념없이 내 수입과 지출 규모에 맞게 움직이고 살게되어 스트레스가 없다.


남과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들 따라하는 문화도 없다. 독일인의 옷이나 가방에서 유행을 느낄 수 없다. 뭔가 사야할 것 같고, 없으면 나만 뒤떨어지는 듯한 불안함이 없다. 따라서 불필요한 소비가 없고, 대부분 소비욕구조차 생기지 않는다.(이것이 독일이 사회적 자본주의 사회라는 단편적 증거가 아닐지.) 독일 광고만 봐도 그다지 사고싶은 마음이 안드는 건 나뿐인가?


한 나라의 총리가 슈퍼에서 장을 보다 다른 프로그램 카메라에 잡히는 나라가 이 곳이다. (아래기사 참조) 독일인인 신랑은 나에게 그게 뭐 대단하냐며 총리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박근혜의 혼자 이마트 장보기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건가? 서로 자기가 높다, 목소리 높이고 턱을 치켜들고, 난 남들과 달라 차별화되고자 하는 귀족마케팅에 익숙한 나로선 메르켈의 평범한 장보기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사람과 사람간의 구분짓기와 비교를 통한 자존심 지키기가 없고, 그냥 자기 삶에 충실한 이 나라의 투박한 국민성에 마음이 편하다.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지고 싫기만 했던 이 나라가 서서히 좋아지고 있는 이유들이다. 자본이라는 주체의 객체가 되어 살기를 강요받던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요즘 내 관심사는 언어습득, 맛있는 요리 레시피, 크리스마스 계획, 가족여행 등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미미한 일이겠지만 개개인에게는 중요한 일들.


오늘 수업시간에 배운 주제인 '가난'을 보면 복지가 잘된 듯한 이 곳 독일에서도 가난은 대물림되고 있다고 하나, 소위 '절대빈곤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상대적 가난'이다. 상대적 가난이야 자본주의 나라에선 늘 있는 것이고, 절대빈곤층조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 환경은 된다는 것에 나는 주목했다. 독일의 모든 것이 다 알아가는 단계지만, 살아가며 보게되는 단면들은 전체적으로 인본주의적이다.

이 인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밑바탕과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하나씩 알아가고 싶다. 일단은 주문한 독일에 대한 책부터 차분히 읽으며 평화로운 금요일 오후를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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