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의 새로운 정의

그리고 닫혔던 나의 사고에 대한 아쉬움

by 봄봄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대만인, 태어난 곳은 영국, 자란 곳은 호주 퍼스. 그래서 호주영어를 하고, 대만어는 일상생활만 가능하며 일을 할 정도로 잘하진 못한다. 지금은 독일 남자친구를 따라 독일에 와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영국,대만, 호주 이렇게 여권이 3개라 3개국 중 어느 나라에 가든 내국인 줄에 선다. 영국 시민권이 있기에 현재 독일에서 머무는데 비자는 필요치 않다. 이국적인 외모로 처음 봤을 땐 얼핏 일본 연예인을 떠올릴 정도로 눈이 크고 화려하게 생겼다. 그녀를 만날땐 국제 공용어, 영어로 대화한다.아, 가끔은 어설프지만 독일어 몇 단어로 소통하기도 한다.


위에 설명한 사람은 최근에 알게된 아헨공대 박사생의 여자친구다. 같은 아시아인이기에 말이 통할 것 같아 따로 만나 차 한잔하기도 했고, 그 2시간여의 만남에서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존심 강하고 열심히 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중 어떤 점이 대만인의 특성인지, 영국인의 특성인지 혹은 호주인의 특성인지 나는 모른다. 그냥 봐도 한국과 많이 다르지 않은가? 한국에서 이런 사람 있었으면 평범하다곤 안했을 것 같다. 호주에 교환학생 왔던 현재의 독일인 남자친구를 따라 겁도 없이 생전 와본적 없는 이 곳 독일에서 독일어 배우며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다양한 국적도 그렇고.


예전에 내가 생각한 글로벌은, -미국-에만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안타깝지만, 나에게 외국이란 미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살까지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배운 외국어라고는 영어밖에 없고, 할리우드 영화말고 유럽 혹은 인도 영화는 본적도 거의 없으며 회사가 위치했던 용산 근처엔 미군을 항상 볼 수 있었으니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알고보니, 세상은 넓고 나라는 많더라. 내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해보고 20대 초반에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내 수많은 친구들에게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아니, 이 좋은 걸 저들만 봤단 말이야?- 그만큼 나에게 유럽은 다양했고, 낭만적이었고, 이색적이었다. 각 도시마다 그 도시만의 색깔이 있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렇게 짧게 여행했던 유럽에 이제는 살러 와 지내면서, 유럽인은 물론 이 곳에 정착해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나도 이젠 그 외국인들 중 하나겠지.)을 보며 글로벌이란 건 이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위에 언급한 친구로 다시 돌아가보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만약 여기가 한국이었다면 너의 이야기를 듣고 다들 너무 신기하다고 할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난 니가 더 신기한데? 넌 나만큼 외국에 오래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0년 가까이 산 한국을 떠나 신랑을 따라 이 곳 독일에 와서 살고 있잖아. 난 지금까지 늘상 우리 아버지의 나라도, 어머니의 나라도 아닌 호주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전혀 모르는 외국에 사는게 힘들지 않아. 외국에서 산다는 건 모험이지만 나에겐 일상이기도 해.

난 너에 대해 들었을 때 너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몇 십년을 익숙하게 정착해온 곳을 떠나 한 남자를 따라온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그녀의 대답에 나는 한대 얻어맞은 듯 했다. 예전에 읽은 어느 블로그에서 한 독일 유학생이 도서관에서 한참 공부하다 고개 들어보니 주변에 온통 외국인밖에 없어서 친구에게 -야, 여기 외국인밖에 없어.-했더니 -여기서 니가 외국인이거든?-했다던 게 생각났다. 모두가 무심코 다 자기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거다. 그래...한국에서는 결혼한 남편이 해외로 발령나면, 혹은 신랑이 외국인이면 그 나라로 따라가는 것이 거의 당연한 것으로 된 듯 하다. 아무래도 남편이 주로 일을 하니까 그렇겠지..주변에 미국교포를 만나 시집간 친구들이 많은 나로서는 남편따라 미국간다는 개념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다른 말을 한다.

이렇게 동일한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존재하고, 그들이 각자 다른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상황이 매 순간 반복되는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그렇게 말하던 글로벌인 것 같다.


독일에 와 지내면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독일에 대학을 온 사람도 봤고, 레바논 국제학교를 다닌 아랍계 미국인인데 독일에 와서 대학진학 준비를 하는 모습도 봤다. 17살인데 음대를 다니는 한국학생을 봐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독일 음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등록만 하고 자퇴하고 독일로 와도 대학입학 자격이 된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그 지겨운 입시지옥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구텐탁, BMW 말고는 몰랐던 독일은 생각보다 복지가 잘 되어있고, 공부와 취업의 기회가 공평한 나라였다.


그런 모습이 일상인 곳에서, 나의 10대를, 나의 20대를 돌아봤다.

내가 고등학교 때, 난 나에게 대학진학 외에 다른 옵션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학 진학 후, 취업이나 고시 외에 나에게 다른 옵션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다니는 학교, 집, 우리 가족, 내 친구들, 우리 동네 말고 더 큰 세상이 있고, 거기서는 전혀 다른 상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만한 상황이 생긴적이 없다. 모든 것은 당연했고, 그냥 원래부터 그런 거였다. 좋은 대학을 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했고, 장학금을 받아 부담을 덜어드려야 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해야했고, 공부 잘하고 똑똑하면 멋진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 와중에 전액장학금을 받아 엄마와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 적도 있고, 가족과의 시간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였다. 내 인생 가장 큰 축복인 아버지께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받은 행복한 딸이기도 했다.

내 인생이 글로벌하지 못해 불행했다는 게 아니다. 단지, 한가지 옵션이 아닌 여러 옵션을 두고 결정할 만한 정보와 여유가 있었다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장학금을 걱정할게 아니라 아예 학비가 없는 나라로 대학을 올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집나가면 개고생만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았더라면, 해외에서 공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때 꼭 미국처럼 돈 많이 드는 나라만 있는게 아니란 걸 알았더라면...

집이 최고고, 나가면 고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세상 어느나라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이고, 똑바른 정신과 성실한 노력이 있다면 좋은 국가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었을 때 반드시 살만한 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 특히나 어린 시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늘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한번쯤 처한 상황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열린 사고를 가지고 살았을 것 같다. 독일에 와서 지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우습게도 -한국에서는 이런데, 한국에서는 안 이런데..-였던 걸 면 말이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은 넓고, 더 많은 기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도 지금 이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지만,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꼭 독일이 아니더라도 넓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알아보고 도전하길 바란다. 그렇게 시도하는 이의 미래는 전혀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