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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0. 2020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는 끝도 없이 우울했다

찬란하길 바랬던 20대의 시작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슬픈 실패는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흔히 말하는 명문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수석입학했다. 자랑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것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을 찾지 못해 너무나 먼 길을 돌아가고 만 이야기다.


전공은 순수미술. 나는 미술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었다.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조금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대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였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내 성격이었을까. 미술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였을까. 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나는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었고, 내 진지함은 사람을 밀어내는 듯했다. 가끔은 그들이 나를 매의 눈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떨 땐 그냥 타인이 무서웠다.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매일매일이 지겹고 두렵고 우울했다. 끝도 없는 수렁에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내게는 게임 원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꿈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었다. 나는 결국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차이를 조화시키지 못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난해함의 굴레에 갇혀 헤매기만 했다. 인간관계도 나빠지기만 했다. 다가오는 사람도 밀어내기 바빴다. 누군가를 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몸을 일으키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 가는 게 끔찍하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남들은 쉽게 해내는 것 같은 일들이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나는 미술을 좋아해서 이 길을 선택했을 텐데. 왜 이렇게 불행하지? 왜 하루하루가 끔찍하지?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일이 전혀 기다려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보면 참 어리다고 할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전공을 180도 수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냥 죽도록 공부했다. 그 여정을 지금 설명하긴 너무 길다.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미술과는 관계가 먼 전공을 공부하고 있다. 나는 훨씬 행복하다. 여전히 인간관계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고, 내 자리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가끔 돌아본다. 친구들은 내가 잠시 길을 돌아갔을 뿐이라고 말해주지만. 그것은 실패였다. 처참하고 외롭고 슬픈 실패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초라한 자아의 몸부림이었다. 어리석음이 남긴 상처였다.


그때의 경험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맞다. 괴로움은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생각하게 된다. 좀 더 잘해볼 수는 없었을까. 마음을 열 수는 없었을까. 좀 더 스스로를 자유롭게 놔둘 수는 없었을까. 실패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기억. 나는 그렇게 내 새파란 2년을, 20대의 시작을, 실패라 결론지었다.



Self. 핸드폰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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