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연 Jul 13. 2020

탈출이란 이름의 터닝포인트

견디다 찾아온 결심의 순간

미술을 그만둔 순간은 아버지와의 짤막한 대화였다. 나 대학 다니기 너무 힘들어. 나도 의사 할까.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의 대답은 “그럴래?”였다.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농담이셨을까? 아니면 원래 내심 내가 미술이 아닌 다른 길을 가길 바라셨던 걸까? 그래도 몇 년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아버지의 응원이 나를 살렸다. 내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 우울에 허덕이고 있었는지는 모르셨을 것이다. 내 우울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더욱.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다. 내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다 헤아릴 수 없었다.


그날로 서점에서 초등학교 4학년 수학 교재를 샀다.





나는 수포자였다. 당시 미대 입시는 수능의 국, 수, 영, 사/과 4개 과목 중 3가지만 기준을 맞추면 됐기에 대부분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학을 제외했다. 예고를 나온 나는 미적분의 개념조차 배우지 않았었다. 아시다시피 의대는 전국의 이과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었기에 남들보다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상황이었다. 아버지와 결정적 대화를 한 건 10월 말. 수능까지 딱 1년 남은 시점이었다. 그때 의대에 다니고 있던 오빠는 불가능할 거라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한번 더 도전. 아마 지금이 너무 끔찍해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이 강했기 때문일 거다. 내 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탈출구가 보였고,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정한 순간 수만 갈래의 근심이 단 한 개의 결심으로 응축되었다. 그래, 의대를 가자. 다른 길을 걷자. 그럴 기회가, 아직 내게는 있다!


부모님의 정서적, 물질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공부에 대한 전략과 적절한 방향 설정, 뚜렷한 목표, 좋은 선생님, 정보와 자료, 남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절대적 공부량.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간절한 목표의식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뜨겁게 이글거리는 간절함을 품고 탈출을 감행했다.






시작을 풀어놓았으니 앞으로는 초등학교 4학년 수학부터 기하와 벡터까지 공부한 이야기, 재수학원, 모의고사,  그 속의 수많은 고비들, 만난 사람들, 나를 버티게 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소 횡설수설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미대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유치하고 부끄러운 스토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흔치 않은 도전이었음을 알기에,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읽고 용기를 얻으리라 믿는다. 또한 나의 여정을 돌아보는 일이기에 이 글은 스스로에게 바치는 위로와 축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믿으며, 1년의 경험을 글로 옮겨본다.





I know there is always a bus stop. 2017. Acrilic on canvas


미대 2학년 때 그린 그림. 제목 그대로 선택지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거기에 정류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저 거기까지 가서 버스를 잡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럴 용기가 있다면, 기꺼이 떠날 수 있다. 많은걸 포기해야 한다고 해도. 선택지는 거기에 있다.




*피드백 환영! 달게 받겠습니다.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는 끝도 없이 우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