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와 우연, 감사
체력이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는데 그냥 힘듦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고 함께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냥 힘들게 산다. 어쩔 도리가 없으면 원래 내 삶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해결할 대상이 아니게 된다면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 문제 없음. 오류 없음의 상태가 된다.
이전엔 다른 사람보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나약하다고 여겼는데 이건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훨씬 강한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더 약한 사람도 수두룩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고통에서 살아남았느냐가 이 강함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직관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아주 작은 고통에도 누군가는 죽어버릴 수 있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는 정도로도 삶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반대로 이럴수가 있나 싶은 고난을 연달아 겪고도 의연히 살아가는 자도 많다. 이런 능력이 타고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인지,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자 후자 모두 그러한 조건으로서 그 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것인데. 전자도 후자도, 모두 현재 이 순간만을 살고 이 순간만의 능력으로 자신만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이유를 찾고 탓을 해봐야 당장 견뎌야 할 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질 뿐이다.
나약해도 어쩔 수 없으니 이런 삶이라도 살아가는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이런 삶이라도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감사는 마법의 열쇠다. 그러나 결코 쉽게 얻어지는 능력은 아니다. 인생의 스테이지를 수십개는 깨고 나서야 진심을 다해 감사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이 기본적으로 잘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선천적으로 만사에 마음 깊이 감사하는 능력을 타고난 자도 있겠으나 그건 모든 능력이 그러하듯 재능이라 불릴 일이다.
쉽지 않다. 힘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 이유를 붙이려 하지 말고 하루하루 해낸다. 해낸다는 건 또 뭔가. 한다.
이 세상에 이뤄야만 하는 일은 없다. 해내야만 하는 성취도 없다. 다만 내 스스로 그것들을 갖고 싶어져 나아가 가지고야 마는 것은 의무가 아닌 꿈과 목표의 영역이다. 마치 취미처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초조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연달아 나오는 부동산 뉴스. 경제는 나빠지고 조건은 불리해진다. 내 몫이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다. 가지고 있는 것조차 스러질 것 같다. 충분히, 라는 건 없다. 상당히 가진 자라도 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다. 그것이 나에게 오지 않을까 초조하다. 갖지 못할까봐 두렵다. 갖지 못한다면 이 삶이 실패일 것이다. 얻어내지 못한다면, 이 숨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태어난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진심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 이 세상은 순전히 우연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신이나 나의 존재 모두 이 지구에 우연히 생겨난, 나고 죽는 한 개체일 뿐이다. 계절이 순환하고 강가의 돌이 마모되는 것과 같다. 그 무엇에도 의미 같은 건 없다. 철저히 우연적인, 그렇기에 모두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자연의 발현일 뿐이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중립이라는 뜻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그렇다면 반대로 압도적인 성취를 이룬 삶도, 그렇지 못한 삶도 각각의 우연일 뿐이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어느쪽이 더 좋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있다면 인간이 자아와 가치관과 취향을 가지고 한 판단일 것이지만, 그건 개인의 주관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초조하다면 나의 자아가 초조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부여해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이 초조함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얻어내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고 얻어내지 못한다면 초조와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의 굴레에서 위를 선망하며 챗바퀴를 굴려댈 것이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고. 챗바퀴 속에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챗바퀴 밖의 삶도 안의 삶도 하나의 우연, 하나의 삶과 죽음일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절대적인 가치는 없으니까 네 마음대로 살라는 것. 욕망을 좇는다면 좇아 좋다. 현실을 즐긴다면 즐겨 좋다. 남겨진 삶과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이 찰나와 같은 우연에 기쁨과 행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뿐인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가능하면 그 경험을 좋게 만든다. 이 우연한 순간에 우연히도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고 있다는 기적에 감탄하고, 기적으로 여기고, 그 사실에 감사하는 것. 이 정도가 지금 초조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감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