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어트랙션

여행의 시작

by 김유연

마침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 왔다. 큰 사건 없이 공항행 리무진을 타고 무사히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짐도 잘 부치고 탑승수속을 마친 후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코노미 창가석은 좁고 답답하지만 마음만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이제 곧 이륙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비행기가 공중에 뜰 때의 감각을 아주 잘 알고있다. 매번 굉장히 집중해서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찾아올 설레는 감각에 가슴이 아릿할 지경이다.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린다. 비행기의 거대한 몸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곧 활주로 앞에 멈춰선다. 우웅거리는 엔진소리가 나더니 이내 질주를 시작한다. 웅웅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와중에 실없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굉장해, 이런 괴물같은 기계를 만들어내서 끝내 하늘을 날다니.' 곧 땅과의 접촉이 끊어질 것이다.


부웅, 앞바퀴가 둥실 뜬다. 이윽고 뒷바퀴도 떨어져 완전한 부유감을 만든다. 그러고는 몇 초 만에 순식간에 높이 날아오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시가 지도처럼 작아진다.


이 앞바퀴가 뜨는 감각은 내게 여행을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작용한다. 예비 여행과 본 여행을 나누는 기준점이 되고 비로소 본격적인 여행에 진입한다. 땅과 하늘, 접촉과 비접촉,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구분되는 순간이다. 몇 번을 느껴도 질리지 않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모서리가 둥근 비행기 창문 밖을 살핀다. 이 역시 몇 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이다. 저녁 일곱 시 반,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이라 도시의 윤곽은 도로의 불빛으로 어림짐작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멀리 시야가 닿는 곳에는 강렬한 노을이 불타고 있다. 내 눈이 바라보는 바로 그 높이에 끝없는 평행선이 하늘과 바다, 우주와 지구의 경계를 가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노을. 여행 1일 차.

우주와 지구라니. 이 비행기가 날고 있는 상공을 커다랗고 동그란 구체(지구)위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고 야릇한 기분이 든다. 새빨갛게 불타는 저 노을이, 디딜 곳 없이 둥실 떠있는 지구의 경계면인 것이다.


과학적으로 그것이 엄밀한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도까지 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집에서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보다도 짧다. 그러니 이런 쓸데없는 공상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도착하고 만다. 하늘과 우주, 비행과 기계에 관한 생각을 해 본다. 멍하니 있다가 가져온 책을 삼십 페이지쯤 읽으면 착륙을 예고하는 안내방송이 울린다.


착륙도 이륙만큼이나 동적인 이벤트다. 이 과정도 매번 집중하고 있기에 어떻게 진행될지 잘 알고 있다. 창 밖으로 고도가 낮아지는 게 보인다. 비행기가 방향을 틀며 오른쪽으로 기운다. 공항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이륙할 때와 마찬가지로 건물의 크기가 빠르게 변한다. 충격에 대비할 타이밍이다.


약 3초 정도 되는 수평 질주 구간, 그리고 곧 바퀴가 땅에 떨어진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격렬한 진동과 십여 초간의 질주. 감속을 위한 마찰 구간이다. 사실상 무사히 착륙에 성공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과정을 알아도 착륙하는 순간은 늘 조금은 놀라게 된다. 속력이 줄어들다 곧 멈춰서고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진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저녁 8시 10분.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어쩐지 한밤중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이벤트였던 비행이 끝나고 남은 일정이 렌트카 인수, 운전, 수면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끝나가지만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오늘 밤엔 성산에 도착할 것이다. 체크인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마침내 새파란 제주 바다를 만날 수 있겠지. 첫 일정은 성산일출봉 등산이 될 것이다. 이륙할 때 풍선이 된 마음은 땅에 내려와서도 작아질 줄을 모른다.


새롭고 기쁜 일이 가득하길,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너그러운 여행자의 마음으로 유연히 대처할 수 있기를. 깜깜한 밤, 공항을 떠나 렌터카 인수구역으로 향한다.


IMG_8117.jpeg 제주공항에 도착하다.

제주도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구독해 두시면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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