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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8. 2020

글을 위해 그리는 그림, 그림을 위해 쓰는 글

글쓰기와 드로잉의 주객 관계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열흘이 지났다. 아직 게시한 글이 20개도 안 되는 초라한 브런치지만, 글을 올릴 때마다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직접 그린 그림을 함께 올리자’다.


이미 습관이 되어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매일 글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듯,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도 꽤나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간단한 드로잉일지라도 창작의 고통이 함께한다. 오늘은 뭘 그린담. 전에 그려 놓은 것 좀 없나? 자꾸 갤러리를 뒤진다. 글을 다 써 놓고도 어울리는 드로잉이 나오지 않아 발행을 보류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그림을 덧붙이고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이 내려놓을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라는 청소년기를 미술과 함께 보냈다. 미술은 일상이고 삶이었고 직업이었다. 이제는 전공자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 흔적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글에서 그림이란 글을 마무리하는 마침표와 같다. 마침표가 찍혀있지 않으면 문장이 성립하지 않듯이. 글 말미의 드로잉 한 점으로 발행 준비를 완료한다.


때로는 그림을 메인으로 고 싶어 드로잉 매거진을 시작하기도 했다. 의무감 없이 가볍게 그리는 그림들. 말 그대로 그리는 행위를 위한 매거진이다. 짧게 덧붙이는 글들은 그림에 종속적이다. 글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主)는 그림이다. 드로잉 눌(null). 무엇이든 부담감 없이 그려보자는 생각에서 이름을 지었다. 그림의 내용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독자가 잠깐이나마 시각적 자극을 얻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창작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드로잉 눌’ 이외의 글에서 그림은 객(客)이다. 글 뒤에 살짝 얹어주는 감초 같은 역할. 심지어 글의 주제와 큰 관련 없는 그림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가끔은 글만으로 만족스러워 그림을 덧붙이기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다 쓴 내용을 한 번 읽고 떠오르는 느낌을 핸드폰의 드로잉 앱을 이용해 슥슥 표현한다. 퀄리티는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손 가는 대로가 곧 작품이라고 믿기에.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정성스레, 혹은 억지스레 덧붙인 내 작업(art)이 사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는 나야 글쓰기나 그림이나 창작의 연장선이지만, 읽는 독자는 어떨까. 내 그림이 글을 온전히 읽는 데 도움이 될까? 조금이나마 당신의 정신을 환기하는 데 기여했을까? 그림을 위한 그림이 아닌 '글을 위한' 그림이기에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그림을 글과 함께 올리려고 한다. 쌓여가는 드로잉을 보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글에도 색채가 더해지는 것 같아 즐겁다. 꾸준히 그리다 보면 고민의 해답이 보일 거라 믿는다. 하루에 한 점 이상의 드로잉, 한 편 이상의 글쓰기. 서로가 서로를 보충하는 아름다운 조화로움을 꿈꾼다.


나의 그림이 좋음을 더하는 섬세한 붓터치가 될 수 있기를. 오늘도 한 점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글의 마침표를 찍는다.


breeze., 핸드폰 드로잉,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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