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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9. 2020

호텔 알바 후기 : 연회장의 뒤편에서

첫 호텔 알바 경험기

저번 편에서 알바 지원 퇴짜 맞은 얘기까지 했던가. 기쁘게도 실은 퇴짜가 아니었다. 신청한 알바 전날에 전화가 온 것이다. "ㅇㅇㅇ씨 맞으시죠? 토요일에 ㅁㅁ 지원하셨죠? 일 가능하신가요?” “네, 네 맞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넵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업무 가능 여부를 묻고 보건증 유무를 확인하고 알바가 확정되었다. 확정 후에는 안내 문자가 줄줄이 왔다. 자가진단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찾아오는 길이라던가. 문자 링크를 통해 직원용 출입구를 상세히 가르쳐주는데 비밀 통로를 사용하는 내부인이 된 것 같았다. 설렌다. 내가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


지도 앱에선 집에서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고 쓰여 있었지만 처음이니만큼 30분 이상 일찍 도착하기로 했다. 업무 시작은 오후 2시. 이 날을 대비해 사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12시에 집을 나섰다. 사족이지만, 버스를 탄 40분 동안 브런치 글을 썼다. 아직 초보 작가지만 브런치의 마력에 중독된 것 같다.




아무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호텔에 도착했다. 직원용 입구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보안카드를 받는다. 안내받은 대로 길을 따라가니 꼭 지하실 같은 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길을 찾고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직원용 유니폼은 깔끔한 정장 스타일의 검정 재킷과 바지. 사이즈별로 여러 벌 걸려 있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 입으면 된다. 혹시나 면접을 볼 일이 있을까 봐 나름 신경 써서 입고 갔는데, 어차피 유니폼을 입은 후 매니저분을 만나는 형식이라 무엇을 입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편한 옷을 입는 게 낫겠다.


옷을 갈아입었으면 위층으로 올라가 다시 미로 같은 길을 지나 안내데스크를 찾는다.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 사인을 하니 1시 30분이었다. 괜찮은 시간에 도착한 것 같다. 2시부터 업무 시작이니 1시 55분까지 휴게실에 있다 오면 된다고 한다. 휴게실에서는 스타일리스트분이 머리를 만져주고 계셨다. 여자나 남자나 단정한 올백 스타일로 정리해주신다. 호텔이니만큼 단정한 헤어스타일도 중요한 모양이다. 나중에 모여 인원체크를 할 때 헤어스타일 확인을 받지 않은 사람은 다시 가서 받고 오라고 한다.  지원요건에 염색 불가, 남성은 장발 불가라 쓰여 있었기에 숏컷인 나도 반려당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별 말없이 통과되었다. 한편 스타일리스트한테 스타일링(?)을 받아본 게 난생처음이라 받는 내내 마스크 밑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셀카도 한 장 찍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보시고는 써젼(surgeon) 같다고. 크크. 영광입니다.


복장 체크 완료, 헤어 체크 완료. 마스크까지 확인하면 이제야 본 업무를 시작한다. 인원체크할 때 보니 일하러 온 사람이 아주 많았다. 이미 근무 중이던 오전 타임 알바생만 오륙십 명은 보였고 나와 같은 타임에는 20명 정도였다. 호텔은 생각보다 알바의 힘으로 돌아가는구나. 오늘이 아니었음 영영 몰랐을 것이다. 이 중 열댓 명을 나누어 다른 연회장으로 이동한다. 대충 보드에 쓰여있는 걸 보니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다. 일요일 저녁에 럭셔리 호텔에서 결혼식이라. 어떤 사람들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연회 시작 전까지 하는 일은 대략 냅킨 접기, 식기 체크, 식기 핸들링, 테이블 세팅 등이다. 결혼식 등의 연회가 시작되면 서빙 업무를 한다. 경험자라면 와인 오픈이나 칵테일 제조 등 더 어려운 일을 시키기도 한다. 나 같은 생초보는 경험자분들께 의지하며 배워가며 일한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눈치껏 물어보며 일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업무를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언제까지 냅킨 접어주시면 됩니다~ 하고 가버리는데, 어떻게 접는데요..? 다행히 옆에 분이 경험자셔서 친절하게 냅킨 접는 법을 알려주셨다. 많은 업무가 그랬다. 어느새 선배분들을 향한 존경심이 싹튼다. 구체적으로 일하는 방법은 직원보다도 같이 일하는 경험자분들께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같이 일하는 베테랑 선배들께 여쭤보자. 혼자 맘대로 해보려고 하다가 실수하지 말고. 실수 커버도 이 베테랑 선배님들이 하신다.


핸들링은 냅킨으로 와인잔이나 텀블러 컵 등을 닦는 일이다. 단순히 닦기만 하는 건 아니고 흠집이나 얼룩이 있는지도 확인한다. 테이블에 나가기 전에 한 번, 테이블에 세팅된 후에 또 한 번 한다. 이외에도 더 하는지는 모르겠다. 볼 때는 단순하고 쉬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컵 안쪽까지 닦기가 힘들다. 하다 보면 은근히 손목이 아프다. (그래도 서빙에 비하면 훨씬 쉽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으니 아래층에 집합 명령이 왔다. 모이고 나니, 두둥, 식사시간! 4시 15분부터 55분까지 총 40분이 주어졌다. 식당 어딘지 아시죠? 55분까지 오시면 됩니다. 어딨는지 모르는데요..! 이번에도 눈치껏 동료분께 여쭤본다. 다행히 식당 위치를 아는 베테랑 분이셨다. 초짜는 혼자 밥 먹으러 가기도 힘들다. 어렵다 어려워. 가면서 처음 오셨다는 동료분과 짧게 수다를 떨었다. 한참 일한 것 같은데 아직 2시간밖에 안 지났네요. 아, 퇴근하고 싶다.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 구내식당에 도착했다. 메뉴는 주꾸미 백반. 열심히 일하고 먹어서 그런가 맨밥이 달았다. 원래 탄수화물 잘 안 먹는데 국수랑 밥이 너무 맛있었다. 이게 노동의 힘인가. 간만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호텔에서 일한다면 식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웬만하면 밥은 맛있게 나온다고.


밥을 먹고 오면 다시 업무 시작. 이후 업무를 하다 보면 왜 맛있는 밥이 필요했는지 깨닫게 된다. 서빙, 정말 무지하게 힘들다. 서빙을 해야 한다면 밥이 잘 안 먹히더라도 든든하게 드시길 권한다. 상상 이상이었다. 전편에서 쌈박하게 일해주리라 썼던 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내가 오만했다.


식 시작 전에 간단하게 교육을 받기는 하는데 실제 일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빠릿빠릿하게 하라는 대로 열심히 돌면 된다. 테이블당 몇 명씩 배정이 되고 그 테이블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 팀이 책임지는 식이다. 다행히 베테랑 분들과 팀이 되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쩔쩔매는 동안 동료분들이 커버하신 걸 생각하니 죄송하고 감사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접시가, 너무 무겁다! 접시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인지 몰랐다. 세 개만 들어도 팔이 덜덜 떨린다. 다섯 개의 디저트 접시가 올라간 트레이를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손님 앞에 메뉴를 배달하는데, 양손 다 무게 감당이 안 돼 미치는 줄 알았다. 매니저분께서 무거우면 무리하지 말고 나눠서 가도 된다고 하셔서 나누기는 했는데, 우리 테이블만 음식이 늦어지는 걸 보면 또 마음이 좋지 않다. 나름대로 꾸준한 홈트로 팔 근육을 단련시켜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전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팀원 분들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죄송한 마음에 더 바삐 움직였지만, 내 팔은 한 번에 스테이크 두 접시가 한계였다. 호텔 알바를 할 의향이 있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접시는 무겁다. 힘쓰는 일이다.


실례하겠습니다..., 핸드폰 드로잉, 2020



손님이 메뉴를 다 드시면 드신 접시를 철수해야 하는데 여기서 또 속도 차이가 난다. 베테랑 분들은 한 번에 한 테이블을 싹 다 걷어오신다. 나는 다섯 개 들면 손목이 끊어질 것 같다.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두 번에 나누어 철수했다. 매니저분께서 계속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라. 할 수 있는 만큼만 들어도 괜찮다. 말씀해주시기는 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무능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내 허약한 팔뚝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식은 8시쯤 마무리되었다. 커피와 차를 내고 나면 한 텀 쉴 수 있었다. 내내 서있었던 탓에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무엇보다 손목이 시리게 아팠다. 집에 가면 파스라도 붙여야지. 시큰거리는 손목을 마사지하며 한숨을 쉬니 벌써 철수 시간이 되었다. 손님이 나가신 후 테이블을 싹 정리하면 업무가 끝난다. 어김없이 접시의 무거움을 한탄하며 잔해를 치웠다.  9시 55분. 정말 꽉 채워서 일했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퇴근길 버스를 탔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냥 편한 신발 신고 와서 갈아 신을 걸. 좋아하는 구두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밉다.




호텔 연회장 아르바이트. 이 일을 또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일하는 도중에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 싶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꽤 할만한 것 같기도 하다. 두세 번은 더 해보고 싶다. 손목도 팔도 만신창이지만 그래도 상하차보다는 훨씬 쉬울 테고. 비록 최저시급이지만 일주일에 이틀 이상 나오면 시급도 오른다는 것 같다. 또 원하는 날짜에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급하게 일해야 한다면 괜찮은 선택이다. 결코 일이 쉽진 않지만 나름의 특색과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럭셔리 호텔의 뒷면을 체험한 좋은 경험이었다. 아름답고 세련된 연회장 뒤편에는 부지런히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의 셰프들, 준비된 음식을 빠르게 서빙하는 알바생들, 이들을 지휘하고 현장을 감독하는 매니저,  능숙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 다음 음식이 준비될 수 있도록 뒷정리를 담당하는 보조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한 번의 식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십 명이 어우러져 식을 서비스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 혹은 오케스트라 같았다.


이제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그 뒤편의 오케스트라가 보일 거다.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스테이크를 썰리라. 서버에게 좀 더 친절해지리라. 당신의 손목을 위해 건배하리라.


다음에는 또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까. 이번 방학은 단기 알바와 글쓰기, 독서로 꽉 채울 예정이다. 내 작은 경험이 알바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첫 알바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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