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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20. 2020

실존의 위기를 느끼다, 홀서빙 알바 후기

이름 모를 종업원 그대를 응원합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실존의 위기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여태껏 지독하게 운이 좋았기에 모르고 살았던 거겠지. 반나절 동안 백화점 식당가 내 한식당에서 홀서빙 일을 하게 됐다. 근무시간은 10시 반에서 오후 3시까지. 마찬가지로 알x몬 앱을 통해 구했다. 호텔에 이어 두 번째 홀서빙 근무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백화점 오픈 전이라 직원용 입구를 찾아 헤맸다. 지원처에 문의하니 오픈까지 기다렸다 들어가시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브런치. 슬슬 글쓰기가 익숙해졌다. 이 모든 게 의미 있는 결실을 맺으면 좋으련만. 기록 자체에도 의미가 있겠지. 속으로 넋두리를 하는 사이 셔터가 올라간다. 체온 체크를 하고, 드디어 입장이다.


정갈한 요리가 나오는 고급 한식당이었다. 하는 일은 테이블 청소, 식기 정리 등이다. 고객 응대는 실수할까 봐서인지 거의 맡지 않았다. 일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릇도 호텔 식기에 비하면 가벼웠다. 힘든 건 몸보다 마음이었다. 최저시급 받는 단기 알바생의 위치란 사업체의 수드라, 최하층민, 하인과도 같다. 척하면 척. 들은 적 없는 지시도 어떻게든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일하러 온 거니까. 바쁜 건 괜찮다. 오히려 더 많이, 잘 일하고 싶다. 내 일손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뿌듯하다. 힘든 건 가르쳐주지도 않은 업무를 해놓지 않았다고 화낼 때다. 겉으로는 예스맨 일색이지만 속은 울컥울컥 타들어간다. '그런 말씀 하신 적 없는데요. 아뇨, 아까 안 알려주셨는데요. 그게 어디 있는데요...'등등. 마음속으로만 되뇐다. 타박과 꾸중 앞에서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해한다. 매일매일의 삶이 고생스럽겠지. 그 와중에 새로 들어온 알바생 가르친다고 신경 써야 하는 게 짜증 나겠지. 어리바리하고 실수만 하는 알바가 밉겠지. 돈 주고 사람 썼는데 일 좀 빠릿빠릿하게 하길 원하겠지. 나라도 그럴 거다. 모든 것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 신입이 귀찮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생은 사람이다. 알바생은 당신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없다. 어린이용 접시가 어디 있고 집게는 어디 있는지 당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놀랍게도 인간이기에, 대놓고 까는 뒷담을 들으면 아프다.


접시를 닦는 동안 내 얘기가 들린다. 깔깔 웃는 소리. "아니 그럼 여기 왜 왔어. 일하려고 온 거 아니야..." 다 들린다. 개미 발톱만 한 먼지가 되는 기분이다. 정신없이 뛰어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보기에는 어영부영 노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서툴더라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자존심이 바닥에 내던져져 우그러진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개인적인 원망을 가지진 않는다. 그들 역시 이 고달픈 삶의 고행자일 뿐이다. 책임질 사람 없는 생채기만이 마음에 그어진 채. 이제야 이해했다. 서점에 왜 그렇게나 '나'를 지키는 자존감 책이 많은지를. 직장 위계의 최하층에서 온갖 꾸중과 타박, 혹은 고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존재의 위기에 처해 있다.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자아는 실존의 위기에 처한다. 사람들은 필요한 거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위로가. 응원이 필요한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겼으면 좋겠다. 또한 상대방도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누군가의 고함으로 상처입지 않았으면. 혹은 내 아래 윽박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둠으로써 상처를 치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 고달픈 위계의 어느 위치에 있던, 당신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응원하고 싶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비록 누군가는 그렇게 대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름 없는 종업원, 핸드폰 드로잉, 2020



그래.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이고 살아가니까. 그저 다음 알바생에겐 조금만 친절히 대해주셨으면. 일단 알바생도 잠재고객인걸요. 인생은 우연의 연속,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다시 만날지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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