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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27. 2020

우울 속 깊이 가라앉기

비 오는 날에는 우울한 노래를 찾아듣는다

요즘은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화창 해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져 있다. 비 오는 날은 습하다. 밖에 나가면 금방 다리까지 젖고 만다. 옷은 축축하고 빨래는 잘 마르지 않는다. 비가 올지 모르겠는 날도 무거운 우산을 챙긴다.


무겁다. 온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무겁고 팔다리가 무겁다. 집 안에만 있었는데도 비에 젖었나 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등에 닿은 소파의 감촉이 좋아서 일어날 수가 없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부채감만 커지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울 속에 푹 잠긴 날. 나만의 해독법이 있다. 우울하고 축축한 노래를 찾아 듣는 것. 젖어드는 비를 피할 수 없다면 아예 우산마저 내던지고 깊이 잠수해본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 밑에 들어가 보면 내 키보다 더 깊은 수렁이 있다. 차가운 물이 몸을 감싸고. 가라앉고 가라앉는다.


나른한 우울 속에 잠겨 흐름에 몸을 맡긴다. 아랫배를 스치고 지나가는 빗물이 차다. 애절한 노랫소리가 물 위에 얹어져 무게를 더한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발을 움직일 것도 없다. 빗소리가 데려다줄 테니까.


발목에 추를 달고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듯이 아래의 아래까지 내려가자. 이곳은 아주 깊다. 밑바닥의 세이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찾아왔어요. 오늘의 우울은 당신에게 맡길게요. 나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 수면에 비치는 해를 바라볼래요.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다. 수위는 계속 차오른다. 누운 자세가 만족스럽다. 내 몸이 완전히 빗물로 차오르면 그때 올라갈 것이다. 우울을 즐길 만큼 즐기고 수면 위로 떠오르리라.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 조금 더 세이렌의 노래를 즐기자. 때가 되면 올라갈 테니.


Lana Del Rey - Born to die

https://youtu.be/L34wcarloaA


세이렌, 2020, 디지털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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