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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03. 2020

스터디 플래너에 일기를 쓰다

솔직한 일상, 헤매는 생각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스터디 플래너가 필수다. 각자 나름대로의 플래너 활용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나는 플래너의 앞부분은 공부 계획과 체크리스트, 뒷부분은 온갖 생각들을 적는 메모장으로 활용했다. 언제 어디서 신박한 생각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항상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재수학원에서라도 말이다.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플래너 활용법은 후에 공부법 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지금은 뒷부분의 메모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담담히 적은 일기 같은 글도 있고. 부끄럽지만 자작시도 있다. 날짜를 같이 적어놨는데 신기하게도 글을 읽으면 글을 쓸 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생각난다. 맞아, 이건 그날 같은 반 학생 때문에 기분 나빠져서 쓴 글이었지. 지금 보니까 되게 별것도 아닌데. 웃기다.


읽던 책의 인용문도 있고. 깊은 생각도 얕은 생각도 있다. 공부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구나. 그때의 생각들에 꼬리표를 붙여본다.


1월 8일.
‘아는 것 자체도 재미있긴 하지만. 공부에 어떤 다른 쓰임새나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아는 것, 배우는 것은 내 시야를 한 차원 넓혀주는 열쇠가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수능 공부는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기엔 너무도 시간 집약적, 압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부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알고자 해 보자. 하루 10시간씩 책상 앞에서의 1년은 내용을 즐기지 않는 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괴로운 과정이지만 괴로움이란 그 뒷면에 쾌락 또한 존재하는 양면적인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양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사무치게 열심히!’

와, 부끄럽다. 플래너의 첫 글이다. 조금 변태 같다. 어떻게든 공부를 즐겨보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하다.


3월 30일
‘나는 기질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성격이라는 단어보다 덜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긴 글인데 한 문장만 뽑았다. 기질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이때부터 의식하고 있었구나.



음.. 플래너를 뒤적거리는데 생각보다 소개할 만한 글이 많지는 않다. 다 너무 개인적이다. 심지어 아무한테도 보여줄 일이 없으니 솔직하게 쓸 수 있어 좋다는 메모도 있다. 찔린다. 미래의 내가 들춰보고 공개할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8월 8일
‘내면의 호수가 말라감을 느낀다. 풍부한 경험, 공감, 고뇌를 통해 샘을 차오른다. 지금의 이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경험은 호수의 옆 벽면만을 단단하게 굳히고 있으니. 혹여 흙을 허물어 호수의 폭을 넓히고 싶을 때 지금 쌓는 것들이 방해가 되지 않기를. 말랑말랑한 심장과 뇌를 사고를, 그 필요성을 잊지 말자.’

나름대로 당시의 상황에 대한 통찰을 해봤다. 공부하는 게 갑갑할 때 썼던 글. 지금의 나는 말랑말랑 한가? 조금 반성하게 된다.


9월 19일
‘너무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그 역시 자신의 고행과 싸우고 있는 중이니.’

종합 재수학원 다닐 때였는데,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반 분위기가 아주 좋지는 않았다.


9월 30일
‘스타벅스 제주 말차 샷 라떼 너무 완벽하다. 아름다운 밤하늘 맛있는 녹차라떼 이 짓도 꽤 할 만 하구나’

재수학원 저녁시간에 스타벅스 들렀다 왔나 보다. 말차 샷 라떼가 맛있긴 하지. 이날 하늘이 예뻤나 봐. 학원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어 참 자주 갔다. 셔틀버스가 없는 주말에는 조금 일찍 가서 아침을 즐기다 등원하곤 했다.


민트색 플래너, 2020. 디지털 드로잉

이외에도 수십 개의 조각 글이 있다. 많이도 썼다. 내키면 또 간간히 소개해봐야겠다. 참, 이 모든 게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웃으며 되돌아볼 수 있는 거겠지. 다행이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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