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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05. 2020

선생님, 아메리카노 시킬까요?

반수 1년 속 일상의 단편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도 아메리카노 시킬까요? 그래, 시원한 걸로. 우리의 수업은 카페 아메리카노와 함께 시작된다. 각자의 자리에 커피 한 잔 씩을 놓고. 내 자리엔 숙제로 풀어온 문제집 다섯 권이 함께 올라간다. 문제 풀고 채점까지가 숙제였으니 선생님께는 모르는 문제만 물어보면 된다. 이런, 별표 친 문제가 너무 많은데. 좀 쪽팔리다. “선생님. 오늘은 좀 많아요…”


오늘은 진도 대신 시험을 보는 날. 거창한 건 아니고, 문제집의 네 페이지 정도를 시간을 정해서 푸는 거다. 푸는 동안 선생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실시간으로 채첨 해주시기도 한다.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손이 떨린 적도 있다. 매의 눈으로 풀이과정을 지켜보고 계시면 너무 무서워서 그만 기초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근데 또 수능의 긴장감이 훨씬 더할 걸 생각하면, 이 시험 또한 그때를 대비한 선생님의 큰 그림 이리라. 군말 없이 문제에 집중한다.


수업 초반에는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보통 고3들은 이 정도 푸는데 20분 걸려. 너는 15분 안에 풀어야 돼. “ “네 쌤.” 지금은 비록 30분이 걸리지만요. 6평 볼 때쯤엔 20분 안에 무조건 풀어야죠. 난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니까. 선생님 말 따라 열심히 하면 언젠간 그렇게 되겠지. 대략 한 문제에 30초 꼴이네… 가능한 거 맞죠 쌤?


이러쿵저러쿵해도 나는 선생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선생님도 내가 이 정도는 따라오리라 믿는다. 2시간 꽉 채우는 수업시간은 선생님과 내가 함께 추는 왈츠 같다. 선생님이 리드하고, 나는 따라가고. 아름다운 미적분 공식에 맞춰 화려한 스킬들을 선보이면서.


두 시간 수업이 끝나면 기진맥진하다.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힘이 팍 풀려버리고 만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2시간 내내 초집중한 모양이다. 그래도 문제풀이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칭찬받았다. 난 칭찬에 진짜 약하다. 히히.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주 2회 수업이니 이번 주에 또 한 번의 수업이 남았다. 그때까지 5권의 문제집 해당 파트 풀어오기, 다음 파트 공식 외워오기. 사설이든 교육청이든 모의고사가 있는 주라면 모의고사 역시 첨삭 대상이다. 인강도 들어야지, 할게 많다. 할게 많으면 삶을 충실히 사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선생님 덕에 긴장감 넘치는 하루였다. 커피 한잔을 더 테이크아웃 해 학원으로 돌아간다. 시원한 커피 맛이 씁쓸하니 만족스럽다.


아아메 두 잔, 2020,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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