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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06. 2020

과학 선택과목 변천사

익숙함을 쫒다 큰 코 다치다

의대에 가려면 수능 과학 과목 두 개를 선택해 응시해야 한다. 선택지는 총 여덟 개. 생명과학, 화학, 물리, 지구과학 4가지 각각 원(1), 투(2) 과목이 있다. (즉, 생명과학 1, 생명과학 2, 화학 1, 화학 2, 물리 1, 물리 2, 지구과학 1, 지구과학 2 총 8개 선택지다.) 투 과목은 원 과목의 심화과정이라 생각하면 쉽다. 당시 서울대는 투 과목 한 가지 선택이 필수였고, 투 과목을 선택하면 가산점을 주는 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수포자였던 내가 투까지 소화할 수 있으리 만무하니 원 과목만 두 개 선택하기로 했다. 앞으로 지칭하는 과목명은 모두 원(1) 과목을 말한다.


일단 생명과학은 무조건 확정. 고등학교 때 아주아주 조금 배우긴 했지만 과목이 있긴 있었고, 또 의대 지망이니까 배워두는 게 좋겠지. 이제 나머지 하나를 뭘 고를까가 고민이다.


우선 물리는 탈락이다. 미술을 시작하기 전 꽤 공부에 자신 있는 학생이었지만 물리만큼은 잘하지 못했다. 게다가 물리 과목은 고수들이 득실득실하기로 유명했다. 분명 엄청나게 어려운 건 맞는데, 다들 그만큼 잘해서 좋은 등급 받기도 어렵고 표준점수도 안 나온다는 거다. 물리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화학이냐 지구냐 그것이 문제로다, 2020, 디지털 드로잉

이제 화학이냐 지구과학이냐가 남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2018년)에는 지구과학이 꿀 과목으로 유명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계산보다 암기 위주라 난이도가 쉽고, 응시생이 많아 점수받기도 유리했다. 하지만 나는 예고를 나온 몸. 수업을 들어본 과목이 아니면 다 생소하고 미친 듯이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생명과학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때 과목이 있었던 화학을 듣고 만다. 커뮤니티의 수많은 ‘화학 어려워요 하지 마세요 ‘ 글들과, 학원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물론 각자 잘 맞는 과목은 사람마다 다르다. 화학이든 물리든 자신 있는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전략적 접근 역시 필요하다. 분명히 객관적으로 유리한 과목이 있다면 흥미분야가 아니라도 고려해보는 게 이득이다.


나는 그걸 몰랐다. 그저 보기에 익숙한 과목을 고르고 만 것이다. 실수였다. 생명과학은 어려워도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화학 양적 계산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인강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어떻게든 풀리긴 하는데, 왜????? 이게 왜 풀리지?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남았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면 외우지 못한다. 모든 암기의 기반은 이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였다. 화학 과목에서 필수라는 화려한 문제풀이 스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성적이 오를 리가 없었다. 과학 공부를 난생처음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만점(50점) 받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아지는 게 보이긴 해야 하지 않나. 처음엔 20점대에서 시작하다가 30점대, 급기야 쉬운 기출문제는 만점까지 받는 생명과학과는 다르게 화학은 영 지지부진했다. 나중에는 거의 수학만큼 시간을 투자하게 됐다. 주객전도였다. 내 반수 계획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수학이었다.


결국 화학을 선택한 걸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선택과목을 바꿔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벌써 6월이었다. 코앞에 다가온 6평은 일단 화학으로 봐야 했다. 그럼 수능까지 남은 시간은 5개월도 안 될 텐데. 그 사이 지구과학을 완성할 수 있을까?


결국 난 6평을 본 후 화학을 포기하고 선택과목을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으로 바꿨다. 어찌어찌 운 좋게 공부를 잘 마무리하긴 했지만, 솔직히 시간이 많이 부족했고 원하는 만큼의 점수를 얻지도 못했다. 6월에라도 바꿔 다행이지만 처음부터 지구과학을 선택했다면 훨씬 좋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게 다 익숙하다고 큰 고민 없이 화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입시생이라면 참고하길 바란다.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데 이유가 있다. 기어이 그 길을 가고자 한다면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꼭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적성을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라. 그리고 필요하다면 중간에 과감하게 길을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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